1) 이후 시즌1과 2를 모두 포함해서 말할 때는 <모범택시>로, 시즌2를 말할 때는 <모범택시2>로 표기할 것이다.
이처럼 참신하지 않은 소재나 설정에도 불구하고 <더 글로리>가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그 답은 흥미로운 캐릭터와 그것을 탁월하게
소화해낸 배우들의 열연, 그리고 무엇보다 차별화된 복수 서사에 있다. 끔찍한 학교폭력에 의해 온몸에 화상 흉터가 남은 피해자가 가해자들에게 복수하는 방식은 물리적 폭력을
수반한 몸(액션)으로 하는 복수가 아니다. 피해자인 주인공은 평생을 거쳐 치밀하게 복수를 계획하고 준비한다. 그리고 가해자들의 것을 하나하나 빼앗거나 그들의 엇나간 욕망을
이용해 스스로 자멸하게 만든다. 드라마는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겪은 상처와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도 잊지 않는다.
상반기 최고 흥행작이 <더 글로리>라면, 강풀 작가의 동명 웹툰을 드라마로 만든 <무빙>은 하반기 최고 흥행작이다. OTT 통합 검색 및 추천 플랫폼
키노라이츠가 공개한 10월 1주 차 통합 콘텐츠 랭킹에 따르면, <무빙>은 8주 연속 OTT 통합 랭킹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디즈니플러스의 약진에 큰 역할을 한
<무빙>은2)“나와 가족이라고 하는 작은 우주를 지키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송경원, 2023. 8. 17)”를
그린 ‘한국형 히어로물’이다.
이 드라마의 각본을 맡은 강풀 작가에 의하면, <무빙>은 히어로물의 껍데기를 쓴 멜로, 즉 정서적으로는 멜로 장르에 가깝다고 한다. 마블 영화처럼 다 때려 부수는
액션보다는 인물의 관계가 <무빙>에서는 더 중요하다고. 이는 <더 글로리>가 여타의 복수극처럼 다 때려 부수는 액션보다 인물(의 관계)에 방점을 둔
것과 유사하다. “기발한 소재는 그냥 소재일 뿐이다.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는 결국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이들의 관계가 무엇인지가 충분히 묘사돼야 한다. (중략) 캐릭터
한 명 한 명에 힘을 주며 대본을 썼다(임수연, 2023. 10. 12).” 한 인터뷰에서 강풀 작가가 한 말이 인상적이다. 구체화된 인물들의 사연과 인물 관계를 통해
자연스럽게 대중 정서, 이를테면 가족애 같은 보편적인 정서가 생성된다. 누군가는 ‘노란 장판’ 감성이라 말하는데, 마음을 울리는 이 지점이 바로 <무빙>의 흥행
열쇠가 아닐까 싶다.
한편, <무빙>은 8화부터 캐릭터에 맞춰 2화씩 묶어 각 인물들의 사연을 다양한 장르에 담아서 보여준다. 그 각각이 마치 한 편의 영화 같은 느낌도 든다. 이
같은 패턴을 영화와 드라마를 절충한 새로운 이야기 방식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2화씩 묶어 다양한 에피소드를 보여주는 구성은 TV 드라마에서도 흔하게 나타난다.
<모범택시>도 그렇다. OTT 플랫폼은 K-드라마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 넣었다. 에피소드 구성을 비롯해 시즌제와 유연한 회차 구성, 소재 선택과 표현에서의 자율성
등이 그에 해당한다. TV 드라마 중 OTT 시대 변화의 바람을 타고 대흥행한 것이 바로 SBS <모범택시>이다. 단, 에피소드 구성과 시즌제는 내용이 지나치게
단순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뒤따른다. <무빙>과 <모범택시>는 그것을 매력적인 캐릭터와 그들이 만든 사연을 통해 극복할 수 있었다. 이는 K-드라마
성공 문법에 주요한 열쇠가 된다.
2) <무빙> 공개 이후 8월 디즈니플러스 일간 활성 이용자 수가 48% 증가하고, 8월 넷째 주 주간 사용 시간이 콘텐츠 공개 이전 대비 130% 늘어나는 등
수치상으로도 고무적인 성과를 거뒀다. 디즈니플러스는 <무빙>을 통해 콘텐츠가 플랫폼을 성장시킬 수 있다는 원론을 증명해냈다(임수연, 2023. 10.
12).
드라마 <모범택시> 포스터 (사진출처: 스튜디오S, 그룹에이트)
2. K-드라마 성공 문법에 대한 재고
<더 글로리>와 <무빙> 외에 2023년 주목을 받았던 OTT 오리지널 드라마로는 넷플릭스의 <D.P.2>와 <너의 시간
속으로>, 디즈니플러스의 <카지노2>, 티빙의 <방과 후 전쟁활동> 정도가 있다. 이 중 대만 인기 드라마 <상견니>를
리메이크한 <너의 시간 속으로>는 OTT 오리지널 드라마 중 얼마 안 되는 판타지 로맨스 장르이다. <너의 시간 속으로>는 원작 드라마인
<상견니>가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으며 많은 팬들을 보유한 만큼 공개 전부터 관심을 끌었다. 그 덕에 성적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12부작에 짧은
러닝타임이라는 분량의 한계 때문에 원작의 이야기 중 주변 인물들에서 파생되는 에피소드들을 많이 생략했고, 원작 팬들은 그것을 아쉽게 생각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에 걸쳐 공개한 디즈니플러스의 <카지노> 시즌1과 2월부터 3월에 걸쳐 공개한 <카지노> 시즌2가 주목받은 것은
8할이 배우들의 힘 덕분이다. 최민식 배우를 비롯해 JTBC <나의 해방 일지>로 신드롬급 인기를 얻은 배우 손석구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사실
배우들의 인기를 걷어내고 드라마만 오롯이 바라보자면 용두사미가 돼버린 결말 등 드라마 내용에 대한 비판이 뒤따른다.
넷플릭스의 <사냥개들>과 <택배기사> 등은 나름대로 주목을 받았지만, 호불호가 갈리면서 기대만큼 크게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특히
<택배기사>는 한반도가 사막화돼 산소 배달이 필수가 됐다는 디스토피아적 설정이 참신하다. 그런데 원작 웹툰에서 가져온 이 참신한 설정이 드라마의 전부라는
것이 문제다. 참신한 설정이 캐릭터와 서사의 개연성으로 연결되지 못한 것이 <택배기사>가 넷플릭스 공식 TOP 10 순위에서 3주 만에 자취를 감춘
이유이다. 정덕현 평론가(2023. 3. 15)에 의하면 “<택배기사>는 잘 만들어놓은 세계관이 너무 짧은 6부작 틀에 맞춰 끝나버린 듯한 느낌” 때문에
“드라마라기보다는 6부작으로 나뉜 278분짜리 영화에 가깝다”라고 한다. 그는 “군더더기 없고 속도감 있는 연출을 장점으로 볼 수 있지만, 보다 느린 호흡으로
캐릭터들이 가진 저마다의 서사와 감정들을 하나하나 채워 넣고 쌓아서 엔딩으로 끌고 가는 드라마로서는 아쉬운 지점(남지은, 2023. 5. 15)”이라고 지적했다.
영화 <도가니>와 <남한산성>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각본과 연출을 맡아 세계적으로 성공한
이후, 영화감독들이 OTT 드라마에 도전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2023년만 해도, 영화 <감시자들>과 <마스터>를 연출한 조의석 감독이
<택배기사>, 영화 <청년경찰>을 연출한 김주환 감독이 <사냥개들>, 영화 <범죄도시>를 연출한 강윤성 감독이
<카지노>의 연출과 각본을 맡았다. 영화에서는 한 편 이상 흥행시킨 경력을 지닌 감독들이지만, 그들의 드라마 성적표는 썩 좋지 않았다. 이들 드라마는 영화
같은 스케일과 영상미로 초반에 강력하게 이끌리지만, 갈수록 몰입도가 떨어진다. 드라마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이야기와 구성의 힘은 부족한 것이다.
그간 OTT 오리지널 드라마는 기발한 상상력이 바탕이 된 특별한 상황, 특히 재난 상황 혹은 디스토피아적 설정을 전경화하면서 그 상황에 처한 인물들의 사연은 촘촘하게
다루지 않았다. 그리고 그 구멍을 영화 같은 영상으로 메꾸었다. OTT 서비스 초반에는 그러한 특별한 상황 및 기발한 설정, 영화 같은 영상만으로도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다 점점 그것이 반복되고 고착화되면서 특별한 상황과 기발한 설정만으로는 대중을 만족시키기 어려워졌다. 결국 드라마는 영화와 달리 상황과
설정만으로 채워질 수 없고 그것이 개연성 있는 캐릭터와 이야기로 이어져야 한다는 본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특별한 상황과 기발한 설정이 영화 같은 영상을 만나면
‘감각’을 자극할 수는 있지만, ‘정서’를 불러일으킬 수는 없다. 캐릭터를 살리고 그들의 사연을 촘촘하게 엮어 이야기가 완성될 때 대중 정서가 형성되고, 그 정서를
동력으로 드라마에 빠져들게 된다. 그 예가 바로 <더 글로리>와 <무빙>이다. 2023년 인기를 얻은 TV 드라마 중 JTBC <닥터
차정숙>과 tvN <일타 스캔들>도 그에 해당한다. 5%의 시청률로 시작해 최고 시청률 18.5%(닐슨코리아)를 찍은 <닥터 차정숙>과
SBS <모범택시2>와 JTBC <대행사> 등 쟁쟁한 경쟁작들 사이에서도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한 <일타 스캔들>의 힘은
캐릭터와 서사, 그리고 그것이 빚어낸 가족과 사랑에 대한 대중 정서에서 비롯된다.
드라마 <닥터 차정숙> 포스터 (사진출처: JTBC)
MBC에서 방영하고 있는 퓨전 사극 <연인>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흥행하고 있다. 글로벌 OTT 라쿠텐 비키에 따르면 <연인>은 8월 5주
차 집계에서 미국, 캐나다, 스페인, 호주, 뉴질랜드 등 5개국에서 TOP 2에 올랐고, 총 68개국에서 TOP 10에 진입했다. <연인>의
영상미(시각적인 볼거리)가 외국인들에게 매력적으로 작용한 것도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연인>의 글로벌 흥행은 잘 짜여진 서사와 보편적인 정서에서 기인한다.
우리의 역사를 담고 있을지라도, 거대한 역사적 격변을 헤쳐 나가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전하는 민족애와 인간애, 그리고 역사적 격변 속에서 펼쳐지는 주인공들의 아픈 사랑
이야기가 전하는 정서는 외국인들에게도 통한 것이다.
한편, 디즈니플러스 <사랑이라 말해요>와 웨이브 <박하경 여행기>는 비록 크게 흥행하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의미 있는 흔적을 남긴 드라마로
주목할 만하다. TV 드라마에서 로맨스 장르가 차지하는 비율이 월등한 것에 반해 OTT 오리지널 드라마에서 로맨스 장르는 약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로맨스 장르인 <사랑이라 말해요>가 대부분의 매체에서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중 가장 높은 평점을 받은 것은 의미가 있다. <사랑이라
말해요>는 복수에 호기롭게 뛰어든 여자가 미치도록 짠한 남자를 만나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잔잔하지만 세심하게 인물들의 감정을 묘사하는 점이
돋보이는 드라마이다.
배우 이나영이 4년 만에 출연한 드라마로 화제가 되었던 <박하경 여행기>는 고등학교 국어교사 박하경의 당일치기 여행기로 요약할 수 있다. 박하경은 삶이
답답하고, 심신이 지친 토요일마다 전국 구석구석을 누빈다. 그런데 그녀의 여정에서는 특별한 사건과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 드라마는 박하경이 만나는 사람들, 즉 기적
같은 만남에 주목한다. 구성도 독특하지만, 형식도 매회 약 25분 내외의 미드폼으로 독특하다. 독특한 구성과 형식, 그리고 멋진 영상으로 <박하경
여행기>는 많은 홍보를 하지 않았음에도 입소문을 타면서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 포스터(사진출처: 웨이브)
3. 2024, 주목해야 할 K-드라마
2024년 OTT 공개 및 TV 방영을 앞둔 K-드라마가 다양한 루트를 통해 소개되고 있다. 그 중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2>와 MBC <수사반장:
더 비기닝>은 지난 시즌의 명성 덕분에 관심이 집중된다. 그리고 디즈니플러스의 <삼식이 삼촌>과 <북극성>(편성 미정)은 배우와 작가에
대한 기대감으로 관심이 생긴다. 1960년대 초 격동기를 배경으로 삼식이 삼촌과 육사 출신의 엘리트 김산이라는 두 남자의 욕망과 브로맨스를 담은 <삼식이
삼촌>은, 삼식이 삼촌 역으로 송강호 배우가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화제가 되었다. 송강호 배우의 첫 드라마 출연작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이 드라마는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북극성>은 정체성을 잃고 살아가던 스파이들이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첩보 로맨스로 로그라인(Log line)3) 자체가 흥미롭다. 지난해 tvN에서 방영한 <작은 아씨들>의 김희원 감독과 정서경 작가가 다시 손을
잡은 것도 기대되는 이유이지만, 무엇보다 강동원과 전지현 배우의 조합이 <북극성>을 기대하게 만든다.
내년에 뚜껑을 열었을 때 설정, 캐릭터, 구성, 정서 모든 요소가 흥행 문법(코드)에 위배되지 않기를, 그래서 이들 드라마가 한류를 선도하길 기다리고 기대해
본다.
3) 이야기의 방향을 설명하는 한 문장, 즉 한 문장으로 요약된 줄거리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