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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과 위기 사이,
글로벌 OTT의 역설
한국 콘텐츠는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흥행작을 선보이며 세계 시장을 향해 약진 중이다. 그런데 정작 국내 유명 콘텐츠 제작사들은 요즘 매우 심각한 위기 국면을 맞고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흥행작은 늘었으나 수익성은 떨어지고 있고, 하루가 다르게 치솟던 제작사들의 주가도 상승분을 반납하며 곤두박질치고 있다. 역설적인 상황이다. 왜 그럴까? 자본력을
앞세운 OTT 덕분에 제작 여건이 나아지고 외형상 성장을 구가하는 듯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제작비는 상승하고 편성 기회는 줄어들면서 악전고투 중인 곳이 늘어나고 있다. 해법을
모색함에 있어 근본적으로는 시장구조의 변화를 읽어야 한다. 즉, 플랫폼들 사이의 헤게모니 쟁탈전이 심화하다 보니 제작 진영은 주체적 경쟁력을 획득하지 못하고 종속변수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한국 콘텐츠 산업이 위기 속에서 향후의 지속성과 발전을 도모하려면, 의미 있는 상생모델 구축을 위한 전략적 고민이 필요한 때다.
김경달 네오터치포인트 대표
1. K-콘텐츠, 글로벌시장을 향해 약진 중
“아무리 연락해도 대꾸를 않고 콧대가 높던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갑자기 먼저 연락을 해오더군요. 얼떨떨하기도 하지만, 뭔가 해볼 만하겠다는 자신감도 들었습니다.”
드라마 <킹덤> 제작사 에이스토리 이상백 대표로부터 몇 년 전, 직접 들은 이야기다.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결과다.
2016년 넷플릭스가 한국에 진출한 뒤, K-콘텐츠를 전 세계에 소개하면서 국내 제작 진영에는 이전과 다른 변화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먼저 넷플릭스의 자본력과 결합해 세계 시장에
선보이게 되는 콘텐츠들이 속속 늘어났다. 2019년 공개된 <킹덤>을 필두로 한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사례는 물론, 방송사들이 제작・편성한 드라마 가운데 화제작을 골라
넷플릭스가 방영권을 확보해 글로벌시장으로 연결한 것이다. 오리지널 제작은 <보건교사 안은영>과 <스위트홈>, <인간수업>, <D.P.>,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 <오징어 게임>, <더 글로리>를 거쳐 <도적: 칼의 소리>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방송사
작품을 구매해 서비스하는 사례도 숱하다. JTBC의 <이태원 클라쓰>와 KBS의 <동백꽃 필 무렵>, tvN의 <미스터 션샤인>과 <사랑의
불시착> 등 유명작품을 포함해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작품들이 올라와 있다. 넷플릭스에서 ‘한국 드라마’를 검색하면 ‘로맨틱한’과 ‘감명을 주는’, ‘범죄수사’ 등 카테고리별
검색 추천까지 해준다.
또한 넷플릭스 협력 작품이 늘어나면서 제작비 상승과 사전제작 보편화 등의 현상이 나타났다. 넷플릭스 진출 당시 한국의 드라마 회당 제작비는 통상 3억~5억 원 내외였다. 요즘은
20억 원 안팎을 웃돌 정도로 올랐다. ‘쪽대본’은 사라지고 사전제작이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제작 품질은 올라갔고, 제작사들의 경쟁력도 높아지면서 제작사의 주가도 상승곡선을
그렸다.
스튜디오드래곤은 대표적 수혜 사례다. 익히 알듯이 CJ ENM의 드라마사업본부가 분할해 2016년 신설된 회사다. <도깨비>와 <비밀의 숲>, <미스터
션샤인>, <사랑의 불시착> 등 화제작을 꾸준히 선보인 곳인데, 진작부터 넷플릭스의 구애를 받았다. 넷플릭스는 2019년 스튜디오드래곤과 콘텐트리중앙(前
제이콘텐트리)에 지분투자와 함께 콘텐츠 협력을 약속했고, 우리가 목도했듯 주요한 화제 작품들이 넷플릭스에서 서비스되고 있다. 스튜디오드래곤은 K-콘텐츠가 글로벌시장으로 확장되는
환경 속에서 선두 주자로 각광을 받았다. 주식시장에서도 K-콘텐츠 대장주로 자리매김하며 시가총액이 한때 4조 원에 육박하는 맹위를 떨쳤다.
2. 한국 콘텐츠 산업 위기론
그런데 K-콘텐츠의 위상이 높아지는 환경변화와 달리 막상 제작 현장에선 K-콘텐츠 산업의 위기론이 제기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위기의 신호는 먼저 주식시장에서 읽힌다. 최근
스튜디오드래곤의 주가는 꾸준히 하락세를 기록 중이다. 현재 시가총액은 1조 4,000억 원대로 최근 1년 사이 전고점 대비 반토막 가까이 내려앉았다. <킹덤> 이후
상승세를 타던 에이스토리도 마찬가지다. 올 초 대비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디즈니플러스의 인기작 <무빙>을 제작한 NEW의 경우도 배급 영화
<밀수>(2023)와 <더 퍼스트 슬램덩크>(2022) 등 흥행작을 많이 내놓았지만, 정작 주가는 최근 1년간 지속적으로 내림세다.
주식시장보다 현실 속의 문제는 훨씬 심각하다. 당장 ‘편성 정체’가 문제다. 현재 제작 중이거나 열심히 사전 제작한 드라마들이 편성을 못 잡고 있는 것이다. K-콘텐츠 인기 속에
제작 작품 수가 늘어났는데 막상 방송사와 OTT에서 편성 즉, 구매를 안 하거나 못 하는 상황이다. 왜 그럴까?
일차적으로 제작비가 오른 탓이 크다. 사전제작이 보편화하면서 제작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제작비가 치솟았다. 작품 수가 늘면서 배우들에 대한 수요가 커졌고 자연히 몸값은 껑충
뛰었다. 그런데 그 몸값에 걸맞은 연기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결과적으로 투자한 비용만큼 좋은 품질의 작품이 나오지 못하고 시청자 반응이 시들해지는 경우가 생기는
등 악순환이 이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TV 광고시장이 줄어들면서 방송사의 드라마를 통한 수익성 악화로 수목극 중단이나 주 1회 편성 등 물리적인 편성 시간의 감소도 한몫하고 있다. OTT 시장이 커지면서
방송사들이 OTT와 직접적인 경쟁 구도가 됐는데 자본력이나 심의에 따른 표현 수위의 차이 등으로 시청자 선호가 OTT로 쏠려가는 요인도 있다.
게다가 OTT와 협업해 드라마를 제작한다 해도 IP를 갖지 못하다 보니 사업적 확장성이 떨어지는 한계를 안고 있다. 그래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처럼 IP를 제작사가
갖고 방영권만 OTT에 판매하는 모험적 시도가 나오고 있기도 하지만, 아직은 그러한 장기적 투자 관점으로 접근하기 힘든 ‘영세한’ 제작 현실이 발목을 잡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렇게 K-콘텐츠 제작 진영에 불어오던 훈풍은 간데없고 싸늘한 한파가 들이닥치고 있다. 바로 ‘위기론’이 등장한 배경이다. 그리고 그 위기는 단순히 ‘플랫폼사’와의 대립각을 세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오히려 자생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누적된 문제로 인한 위기 상황의 도래를 단기 처방으로 극복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시장구조의 변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3. 스트리밍 전쟁, 시장 구조의 변화
다소 거칠지만 두 가지의 키워드로 시장의 변화를 간추려 보려 한다. ‘OTT의 TV화’와 ‘플랫폼 각축전 심화’가 그것이다.
1. OTT의 TV화
최근 상징적인 장면이 있었다. 미국 내 TV 점유율 변화가 그것이다. 지상파와 케이블을 합친 점유율이 50% 이하로 떨어졌다. 당분간 혼조세를 보이겠지만 추세는 뚜렷해지고 있다.
스트리밍 기반으로의 전환이다.
글로벌 컨설팅그룹 PWC는 2027년쯤이면 미국 전체 가정의 38%만이 유료 TV를 시청할 것으로 전망한다. 현재는 그나마 50% 안팎을 넘나들고 조만간 40%대 아래로 쪼그라들
것이란 얘기다. 이와 함께 기존 레거시 미디어들은 매년 300억 달러가량의 광고 수익이 감소할 것이고, 반면에 OTT 시장은 계속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란 전망도 덧붙여졌다.
2. 플랫폼 각축전 심화
미국의 TV 점유율을 다시 살펴보자. 2021년 5월, 스트리밍이 26%로 지상파보다 1%포인트 앞섰다. 당시 스트리밍 가운데에선 넷플릭스와 유튜브가 6%씩 공동 1위를 점했고
훌루(3%),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2%), 디즈니플러스(1%) 등이 뒤를 이었다. 1%대 이상의 서비스사업자는 5개 정도였다.
2년 남짓 지난 2023년 7월, 스트리밍은 38%대의 비중으로 훌쩍 커졌다. 그런데, 그 안의 서비스사업자 수는 10개 정도로 부쩍 늘어나 눈길을 끈다. 유튜브가 9.2%로
앞섰고 넷플릭스(8.5%)와 훌루(3.6%),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3.4%) 등 기존 선두 주자들이 성장 중인 것도 맞지만 새롭게 등장한 서비스의 비중도 제법 높아 특기할
만하다. 맥스(1.4%)와 피콕(1.1%), 파라마운트 플러스(1.0%) 등 거대 미디어들이 공격적으로 투자한 유료 서비스는 물론, 투비(1.4%)와 로쿠(1.1%) 등 광고 기반
무료 서비스들이 생존전략 차원의 혈투를 펼치고 있는 셈이다.
스트리밍 플랫폼의 비중 증가와 헤게모니 쟁탈전의 심화, 이 두 가지 현상은 미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대다수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른 점을 꼽자면, 미국 시장에선
해외 사업자보다는 미국 내 서비스플랫폼들 사이의 각축전이지만, 여타 나라들은 글로벌 사업자와 로컬 사업자 간의 경쟁 구도란 점이다. 당장 한국만 해도 넷플릭스가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고, 이외에 티빙과 웨이브, 그리고 쿠팡플레이 등이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그 과정에서 웨이브와 티빙은 2022년 실적에서 각기 1,216억 원과
1,191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왓챠는 매물로 나올 정도로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
이 같은 ‘스트리밍 전쟁의 심화’는 이후 어떤 국면으로 이어질까? 구체적 예단은 조심스럽지만, 프랑스의 사례에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프랑스는 한국처럼 넷플릭스가 1위 서비스로
굳건한 입지를 갖고 있다. 이외에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와 디즈니플러스도 상당한 비중을 점하고 있다. 그 속에서 한국의 웨이브처럼 프랑스의 주요 방송사 세 곳이 연합해 내놓은 OTT
‘살토(Salto)’가 있었다. 그런데 프랑스 규제 당국의 승인 절차와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인해 출시가 늦어지면서 2020년 10월 서비스 개시 이후 결국 글로벌 서비스들의
벽을 넘지 못하고 2023년 초 서비스를 종료하고 말았다.
현재 글로벌 스트리밍 시장은 플랫폼 간 각축전이 펼쳐지고 있다. 나라별 구독자 수 기준, 1위 사업자를 표시한 아래 인포그래픽을 통해 그 치열함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넷플릭스가
천하를 호령할 듯 기세가 대단한 것은 맞지만, 아직은 아마존과 거대 미디어들의 추격 속에서 고전 중이기도 하다.
4. 협력적인 생태계 구축 모색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뾰족한 답을 제시하긴 힘들고 원론적 수준의 논의에 불과하겠지만, 의견을 보태본다. 글로벌 OTT는 양날의 검이다. 협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하지만 상호적이고 미래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하지 못한다면 이른바 ‘하청기지’ 신세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넷플릭스 입장에서 볼 때, K-콘텐츠는 아직 투자 대비 효율이 좋은 훌륭한
파트너여서, 과감한 투자를 공언하면서 실행 중이다. 하지만 결국 플랫폼 간의 헤게모니 쟁탈전에서 ‘쏠림현상’을 만들어내고 독점적 입지를 구축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의존성 강화는 불가피할 것이다.
따라서 현재 격전 중인 플랫폼 간의 헤게모니 쟁탈전을 주의 깊게 살피면서 글로벌/로컬 OTT와의 협력적 관계 형성을 고민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다만, 그 협력관계가 일방향의
의존적 모델이 되어선 안 되며, 자생력 확보를 도모하는 게 중요할 것이다. 이를테면 서로 리스크를 분산하면서도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IP 개발 노력을 이어가는 등의 아이디어와
방법론 개발도 필요할 것이다.
아울러 다소 실기의 느낌도 있지만, 연합군 전략에 대한 모색도 좀 더 전격적으로 해보면 좋을 듯하다. 국내 플랫폼들이 해외 진출에 있어서는 각개 전투가 아닌 연합군 형태의 모색을
해본다든가, 향후 성장성이 높게 평가되는 광고 기반 무료 스트리밍 플랫폼을 해외 진출의 교두보로 삼는 등의 연합군 아이디어가 있을 수 있겠다. 또한 다양한 콘텐츠 장르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플랫폼을 통한 글로벌 진출의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웹툰 플랫폼’과의 결합모델 등 다양한 궁리를 해보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