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1
웹툰-드라마를 통한
원작 웹툰의 이야기-세계의 확장과 변주
(영상) 스토리텔링 산업에서 원작/원천 콘텐츠로서 웹툰의 가치와 효용성은 매체 전환된 작품들 [원작 매체(웹툰) ⇨ 전환 매체(드라마·영화·소설·뮤지컬·게임·애니메이션 등)]의
연이은 흥행을 통해 계속해서 증명되고 있다. 이 중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이하 웹툰-드라마)들은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를 위시한 글로벌 OTT 플랫폼의 가장 인기 있는
오리지널 시리즈로 자리 잡으며 전 세계 관객들을 사로잡고 있다. 이 글은 웹툰-드라마의 내러티브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통시적인 관점에서 간단하게 정리하고 웹툰-드라마가
MCU(Marvel Cinematic Universe), DC 확장유니버스(DC Extended Universe, DCEU)와 같은 웹툰 스토리 유니버스(Webtoon Story
Universe, WSU)에서 핵심 콘텐츠가 될 수 있을지에 관한 가능성을 논하고 있다. 특히 이 글은 초능력 히어로들이 등장하는 ‘강풀 유니버스’에 속한 <무빙>과
오랜 창작 협업 짝패인 연상호-최규석이 만들어 가고 있는 <지옥> 프로젝트에서 그 가능성을 찾고 있다.
채희상 한신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홍보학부 교수
1. 들어가며
일상의 짧은 에피소드 중심의 이야기-세계1)를 그리며 매체의 역사를 시작한 웹툰은 포털 사이트 다음(daum)의 ‘만화 속
세상’이라는 새로운 플랫폼(당시에는 ‘플랫폼’이라고 불리지는 않았지만)에 연재된 강풀의 <순정만화>(2003)가 크게 인기를 얻으며 독자적인 영상 스토리텔링 장르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소설, 만화, 영화 등과 비교해 좀 더 이른 나이에 데뷔가 가능한 포털 플랫폼에 10~20대 젊은 작가들의 재기 넘치는 작품들과 기존 만화가들의 작품들이
어우러지면서 웹툰은 원작 콘텐츠로서 다양한 스토리텔링 장르에서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 특히 여러 장르 중에서도 웹툰-드라마의 경우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의 글로벌 OTT
플랫폼들이 시장 확장을 위해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본격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한번 크게 도약하는 계기를 맞이하게 됐다.
올해에도 한국의 웹툰-드라마들은 글로벌 OTT를 통해 그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무빙>, <마스크걸>, <D.P.2>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고
<스위트홈>, <지금 우리 학교는> 등의 기대작들이 시즌2 공개를 앞두고 있다. 웨이브, 티빙 등의 국내 OTT 플랫폼들도 <거래>, <운수
오진 날> 등을 통해 웹툰-드라마 제작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이 중 <무빙>은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콘텐츠어워즈(Asia Contents Awards, ACA)와
결합해 올해 처음 개최된 제1회 국제 OTT 페스티벌(International OTT Festival)에서 베스트 디지털 VFX 작품상, 베스트 크리에이티브, 작가상(강풀), 남자
주연배우상(류승룡), 남·여 신인상(이정하, 고윤정)을 수상함으로써 올해 최고 화제의 OTT 오리지널 드라마로 떠올랐다(과학기술정보통신부, 2023).
1) ‘이야기-세계’는 웹툰(만화), 소설, 영화, 연극, 뮤지컬, 게임 등의 스토리텔링 장르에서 창작해내는 작품 속 세계를 통칭하는 조어이다. ‘이야기-세계’는 개별 작품 속
세계관에 따라 구성 및 작동된다. 디지털 VFX(Visual Effects) 기술의 발전으로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시공간 재현이 가능해짐에 따라 영상 스토리텔링 장르에서
‘이야기-세계’의 표현의 규모와 양식에 있어 질적인 전환이 이루어졌다. 영상 스토리텔링 장르에서 현실과 가상이 자연스럽게 혼합된 ‘이야기-세계’를 다룬 작품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것도 이러한 흐름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
웹툰-드라마 <무빙>, <마스크걸>(사진출처: 디즈니플러스, 넷플릭스)
본 글은 웹툰에서 드라마로의 매체 전환 과정에서 발견되는 내러티브 특성을 이야기-세계의 확장과 변주를 중심으로 살펴보기 위해 기획됐다. 이를 위해 우선 웹툰 매체 전환의
역사를 웹툰-드라마를 중심으로 짧게 정리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발견되는 새로운 내러티브 특성을 웹툰 스토리 유니버스(Webtoon Story Universe, WSU)의
가능성의 측면에서 살펴봤다.
2. 웹툰-드라마의 짧은 역사
2.1. 두 번의 터닝 포인트 : <미생>, <킹덤>
웹툰에서 드라마로의 매체 전환은 두 번의 터닝 포인트를 계기로 큰 변화를 겪었다. 첫 번째 터닝 포인트는 tvN에서 20부작으로 방영된 <미생>의 전국적인 인기 이후에
촉발된 웹툰-드라마 열풍이다. <미생> 이후 <송곳>(2015, JTBC), <치즈인더트랩>(2016, tvN), <국수의
신>(2016, KBS2), <동네변호사 조들호>(2016, KBS2) 등이 연이어 제작됐고, 지상파, 종편, CJ ENM 등의 방송 플랫폼에 주요한 드라마
시리즈로 편성되기 시작했다.
두 번째 터닝 포인트는 <킹덤> 시즌1의 넷플릭스에서의 성공이다. <킹덤>은 제작(창작) 측면에서는 제작(시장) 규모와 표현 수위의 확대, 유통 측면에서는
글로벌 OTT 플랫폼으로의 확장을 가져온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기존의 방송 플랫폼에서는 다루기 힘든 잔인한 장면인 필수적인 역병 사극(좀비)이자 회당 약 20억이 투입됐던
<킹덤>의 성공은 웹툰-드라마의 질적·양적 변화를 촉발했다. 웹툰-드라마가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티빙, 웨이브 등의 OTT 플랫폼에 핵심 오리지널 시리즈 레퍼토리가
되면서 웹툰-드라마의 제작이 경쟁적으로 활발하게 이뤄졌다.
두 번의 터닝 포인트를 통해 웹툰-드라마는 방송, OTT, 포털 등의 다양한 플랫폼에서 작품의 내용 및 규모, 제작사와 플랫폼 사업자와의 계약 관계 등에 따라 유연하게
편성/공개되기 시작했다. 전 회차 OTT 동시 공개(<스위트 홈>, <D.P.>), 시간차 연재 OTT 공개(<무빙>), 방송-OTT 플랫폼 순차
공개(<경이로운 소문>) 방식 등이 대표적인 유통 방식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2.2. 웹툰-드라마의 이야기-세계 구축하기 : <경이로운 소문>, <D.P.>
웹툰을 원작으로 매체 전환되는 과정을 거치는 웹툰-드라마에는 자연스럽게 원작 웹툰의 이야기-세계에서 통용되는 세계관이 녹아들게 된다. 전환 매체(드라마)의 이야기-세계의
세계관이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것이다(채희상, 2017). 웹툰-드라마 작품들이 쌓여감에 따라 원작 매체(웹툰)와 전환 매체(드라마)의 이야기-세계는 상호침투의 과정을 거치며
독특한 이야기-세계를 만들어 가게 된다. <유미의 세포들>의 유미의 머릿속 세포들의 세계, <스위트홈>의 괴물로 변한 인간들의 세계, <쌍갑포차>의
월주가 손님의 꿈속 세상에 들어가 만들어 가는 세계 등은 기존 드라마의 이야기-세계를 확장하고 있는 사례들이다.
하지만 매체 전환을 통한 웹툰-드라마의 이야기-세계의 구축 과정에서 작품의 세계관을 둘러싼 논란이 발생하기도 한다. 원작의 세계관을 정교한 이야기-세계의 구조화 없이 변경할
경우 원작의 세계관에 익숙한 웹툰 독자들에게 큰 실망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원작 웹툰을 보지 않은 관객들에게도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이야기-세계의 세계관은 작품
수용에 있어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여지나 작가의 갑작스러운 교체로 인해 이야기-세계의 개연성과 세계관의 오류가 발생하면서 논란을 일으킨 <경이로운 소문>
시즌1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웹툰 <경이로운 소문>과 웹툰-드라마 <D.P.2>(사진출처: 카카오웹툰, 넷플릭스)
웹툰-드라마의 이야기-세계를 정교하게 구축하기 위한 내러티브 전략으로 원작 작가가 직접 매체 전환 과정에 참여하는 것만큼 효율적인 방법은 없다. 윤태호는 자신의 미완성
웹툰을 영화화한 <내부자들>(2015)의 제작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동일한 세계관 아래에서 이야기-세계가 구성될 수 있도록 했다. 스타 드라마 작가인 김은희는
자신이 스토리를 맡은 웹툰 <신의 나라>의 매체 전환 과정에 참여해 직접 <킹덤> 시리즈의 극본을 쓰기도 했다. 두 작품의 경우 미완성 원작, 드라마
작가의 웹툰 스토리 창작이라는 특별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적극적 참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매체 전환 과정의 시작 단계부터 원작 매체와 전환 매체의 창작자들 간 협업이 보편화되는 추세이다. <D.P.> 시리즈의 경우 처음부터 원작자인
김보통이 각본 작업에 참여해 매체 전환 과정에서 원작과 드라마의 이야기-세계의 연속성을 유지하려 했다. 그 결과, 동일한 세계관 아래에서 연결되는 두 매체의 이야기-세계는
보다 두텁게 관객에게 작품의 의미를 전달하는 효과를 발생시켰다.
3. 웹툰-드라마의 이야기-세계의 정교화 : <지옥>, <무빙>
원작의 세계관을 만든 창작자들이 매체 전환 과정의 처음부터 감독, 극본을 맡는 <지옥>과 <무빙> 두 편은 웹툰 스토리 유니버스(Webtoon
Story Universe, WSU)로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이다.
<지옥>은 연상호2)감독이 스토리와 영상화를, 최규석 만화가가 각본 및 만화화를 맡은 프로젝트이다.
<지옥>은 대학 때부터 20여 년간 이어져 온 두 작가의 합작 프로젝트 중 하나로 ‘(지옥의) 고지와 시연’이라는 세계관 아래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다(문학동네, 2023). <지옥>의 WSU는 ‘<지옥: 두 개의 삶>(2003, 애니메이션) ⇨ <지옥1>(2019~2020,
웹툰) ⇨ <지옥>(2021, 웹툰-드라마) ⇨ <지옥2: 부활자>(2023, 웹툰 연재 중), <지옥2: 부활자>(웹툰-드라마 촬영
중)’으로 이어지고 있다. 웹툰 <지옥1>에는 없었던 ‘시연을 당한 박정자가 부활하는’ 웹툰-드라마 <지옥1>의 마지막 장면이 웹툰 <지옥2:
부활자>의 첫 화 내용과 이어지는 이야기 구조는 ‘지옥 WSU’가 매체를 넘나들며 정교하게 설계돼 있음을 알려준다.
2) 연상호는 영화, 애니메이션, 웹툰 등의 여러 매체를 넘나들며 이야기-세계를 창작해 온 독특한 이력의 작가이다. 그가 만들어 낸 ‘<서울역>(애니메이션) ⇢
<부산행>(영화) ⇢ <집으로>(애니메이션) ⇢ <반도 프리퀄 631>(웹툰) ⇢ <반도>(영화)’로 이어지는 이야기-세계는
‘연니버스(Yeon-niverse: 한국 사람의 대부분이 좀비로 변한 아비규환 속에서, 생존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 작품들의 묶음)’로
불리기도 한다.
웹툰-드라마 <지옥>의 시연 장면과 <무빙>의 강풀 작가 (사진출처: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디즈니플러스에서 독점 공개된 <무빙>은 대표적인 웹툰 1세대 작가인 강풀의 동명(同名)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히어로, 학원, 로맨스, 휴먼, 멜로, 액션,
초능력 등의 여러 장르가 혼합된 작품이다. 강풀은 매체 전환됐던 예전 자신의 작품들(<순정만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아파트>,
<26년>)과 다르게 직접 극본을 쓰며 웹툰-드라마의 이야기-세계를 구조화해냈다.
강풀 : 처음엔 다른 분이 각본을 썼다. 피드백 과정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더니 그러면 직접 한번 써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이 왔다. 드라마 대본을 써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열심히 드라마를 보고 각본집, 작법 가이드 등을 읽으면서 벼락치기로 공부했다. 물론 결국엔 내가 잘 쓰는 방식으로 쓸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지만. (웃음) 원래는 12화, 최대한 해도 16화 정도의 분량이었는데 나는 7화씩 총 21화로 가고 싶었고 최종적으론 20화로 조정됐다.
- 강풀 작가 <씨네21> 대담 중에서(송경원, 2023. 8. 17)
강풀은 직접 시나리오를 쓰면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기는 했지만, 웹툰과 웹툰-드라마를 관통하는 세계관에 따라 작동하는 이야기-세계를 보다 정교하게 구조화하는 역할을
해냈다. 특히 <무빙>은 초능력 히어로들이 등장하는 강풀의 시리즈물[<타이밍>(시간능력자), <무빙>(신체능력자),
<브릿지>(신체, 시간 능력자의 만남)]에 속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여러 작품이 공유하고 있는 세계관을 유지하면서 이야기-세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원작자가 가장 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만화가를 직업으로 택한 이상 하나의 세계관을 만들고 그 속에서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가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
‘아파트-타이밍-어게인-조명가게-무빙-브릿지’까지 모두 등장인물이 겹치는 작품입니다. 아주 오래전 <타이밍>을 그리던 시점부터 막연히 이 시리즈를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 강풀 작가의 말 중에서(강풀, 2018)
웹툰-드라마 <무빙>의 16회에 잠깐 등장했던 <타이밍>의 시간 능력자(박자기) 김영탁은 웹툰 <무빙>에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등장한다. 물론 웹툰에서와는 다르게 웹툰-드라마에서는 얼굴을 가리긴 했지만 말이다. 이 장면은 ‘강풀 유니버스’라고 명명되고 있는 강풀의 WSU가 계속 이어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강풀 유니버스가 웹툰-드라마 <무빙> 시즌2일지 웹툰 <히든>이 될지 아니면 <타이밍>이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지만
말이다.
4. 나가며
지금까지 웹툰의 드라마로의 매체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변화의 흐름을 정리하고 그 가능성을 웹툰 스토리 유니버스(WSU)를 중심으로 살펴봤다. 원작의 이야기-세계와
세계관의 핵심 구성 요소들에 관한 명확한 이해, 매체 전환 과정에서의 원작 작가의 적극적인 참여, 초능력 히어로물, 다크 판타지 스릴러라는 장르적 특성 등이 어우러진
<지옥>, <무빙>의 사례를 통해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스토리 유니버스 구축의 조건과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향후 두 이야기-세계가 어떻게
확장되고 변주되는지를 지켜보면서 스토리 유니버스에서 웹툰과 웹툰-드라마가 수행하는 역할이 무엇인지를 정리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