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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성의 역사 케이팝,
가상 아이돌의
의미와 가능성
케이팝의 역사는 확장성의 역사이다. 오늘날 다국적/다인종 케이팝 그룹들은 케이팝이 인종, 언어, 국가의 경계를 넘어, 어떻게 확장돼왔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에 가상 아이돌의 존재는
케이팝의 확장성이 현재 휴먼과 비휴먼의 경계를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혹자는 가상 아이돌의 비휴먼이라는 특징 때문에 휴먼 아이돌과의 차이점에 주목하지만, 사실 케이팝 산업에서
‘아이돌’이라는 독특한 개념과 의미를 비추어 볼 때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더 많다. 특히 글로벌 케이팝 팬들의 향유 방식 등을 볼 때 가상 아이돌의 존재는 현실/비현실, 휴먼/비휴먼
등의 이분법으로는 설명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가상 아이돌이 현재 케이팝의 확장성, 특히 전통적 개념의 음악이라는 범주를 어떻게 넘어갈 수 있는지 살펴봄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본 글을 통해 케이팝 담론에서 가상 아이돌의 의미와 가능성을 조명하고자 한다.
이원석
Washington University in St. Louis 한국학 강사
1. 케이팝의 확장성
1-1. 케이팝에서 케이란 무엇인가?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l'existence précède l’essence).” 2021년 SM 엔터테인먼트가 에스파(aespa)의 ae-member(아이-멤버)라는 새로운
개념을 소개하며 사용한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의 말이다. SM 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ae는 “우리가 일상에서 올리는 모든 데이터로
형성되는 인격을 지닌 또 다른 존재”로 디지털 세계에서의 또 다른 자신이다. 즉, 에스파의 ae-멤버란 아바타 버전의 가상-멤버로, 현실에는 없지만 디지털 세계에서 존재하는 에스파
인간-멤버 4인의 또 다른 모습을 말한다. 소개 당시 다소 생경했던 이 개념이 이제는 에스파 팬들뿐만 아니라 다른 케이팝 팬들에게도 익숙해졌다. 주목할 점은 ae-멤버라는 개념을
통해 현실 세계와 디지털 세계를 오가는 에스파의 확장성이다.
돌이켜보면, 케이팝의 역사는 확장성의 역사이다. 한국어가 아닌 가사의 노래를 발매하는 것뿐만 아니라, 1990년대 교포 멤버들의 영입부터 시작해 2000년 중, 후반부터 보편화된
일본, 중국, 태국 출신 등 주로 아시아의 외국인 멤버 영입을 거쳐, 2010년 중반부터 보이기 시작한 비-아시안 멤버들까지 케이팝은 항상 언어적, 국가적, 인종적 경계를 넓히며
발전해 왔다. 최근 JYP에서 선보인 글로벌 걸그룹 비춰(VCHA)나 올해 하이브가 선보일 캣츠아이(KATSEYE)와 같은 그룹들은 케이팝의 확장성이 단순히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계속 진행 중임을 보여준다. 이 같은 확장성은 외국인으로만 구성된 케이팝 그룹들의 출현까지 가능하게 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과연 케이팝이 무엇인지, 케이팝에서 케이는 무슨 의미인지
본질적 질문을 불러일으켰다. 쉽지 않은 질문임에 틀림없다. 본 글에서는 케이를 찾기 위한 많은 시도 중 김숙영의 책 K-Pop Live: Fans, Idols and
Multimedia Performance에서 제시된 끊임없이 변한다는 의미의 kaleidoscopic pop으로의 K-Pop에 집중한다.1)
1) 김숙영은 kaleidoscopic pop외에 K를 위한 설명으로 keyboard or keypad pop, ketchup pop, Kleenex pop, ‘C대신 K’를
사용한 korporate pop, and Korean pop을 제시했다.
1-2. 가상 아이돌의 의미와 확장성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오늘날 케이팝은 전통적인 개념에 도전하며 다변화하고 있다. 가상 케이팝 아이돌의 존재는 아이돌이 꼭 인간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도전이라 볼 수 있다.
에스파가 선보인 ae-멤버 개념을 넘어 메이브(MAVE:), 슈퍼카인드(Superkind), 사공이호(SAGONG_EE_HO), 플레이브(PLAVE), 아뽀키(APOKI),
이터니티(IITERNITI), 한유아 등 다양한 형태의 가상 아이돌이 글로벌 케이팝 팬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가상’을 세계관으로 활용한 걸그룹 ‘에스파’와 가상과 실제 가수가 함께 활동하는 보이그룹 ‘슈퍼카인드’ (사진출처: SM 엔터테인먼트, 딥스튜디오)
장유정(2023)에 따르면 오늘날 가상 아이돌은 세 가지 타입, 즉 1) 에스파와 슈퍼카인드 등과 같이 가상과 실제 가수가 함께 존재하는 경우, 2) 메이브나 이터니티 등과 같이
멤버 전체가 인간의 모습을 한 가상 아이돌로 구성된 경우, 3) 플레이브, 사공이호, 아뽀키를 통해 볼 수 있는 캐릭터화된 가상 아이돌로 분류될 수 있다. 1998년 최초로
선보여진 사이버가수 아담때와는 달리 오늘날 가상 아이돌들은 여러 면에서 발전된 양상을 띤다. 특히, 인간의 모습을 한 메이브, 이터니티, 한유아 같은 경우는 실제 사람의 모습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데,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과연 그들의 존재를 진짜(Real)라 여기며, 진정한(authentic) 아티스트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의구심을 일게 한다.
이 점에서, 미디어 학자 피에르 레비 (Pierre Lévy)의 주장은 주목할 만하다. 레비는 그의 책 Becoming Virtual: Reality in the Digital
Age에서, 가상성(virtuality)은 현실성(reality), 가능성(possibility), 실재성(actuality)과 더불어 존재 방식의 하나이며,
가상화(virtualization)는 비현실화(derealization)가 아니라 정체성의 변화로, 고려 대상의 존재론적 무게 중심이 이동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가상
아이돌의 존재는 현실/비현실의 이분법 접근이 아닌 아이돌이라는 개념의 새로운 변화 형태로 바라봐야 한다. 가상 아이돌을 논함에 있어 진짜(real) 그리고
진정성(authenticity) 개념과 함께 항상 언급되는 것이 라이브니스(Liveness)인데, 필립 오슬랜더(Philip Auslander)는 라이브니스란 텍스트 자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텍스트의 관계에서 비롯된 결과라 주장했다(Auslander, 2011). 다시 말해, 가상 아이돌의 라이브니스에 대한 판단은 휴먼/비휴먼의 구분이
아닌, 팬들의 향유 방식과 참여에서 찾아야 한다.
멤버 전체가 인간의 모습을 한 가상 아이돌 ‘메이브’와 캐릭터화된 가상 아이돌 ‘플레이브’ (사진출처: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 블래스트)
1-3. 공통점과 차이점
언뜻 보면, 비휴먼이라는 사실 때문에 가상 아이돌은 휴먼 아이돌과 차이점이 많아 보이나 사실 공통점이 더 많다. 예컨대, 그들은 모두 소속사로부터 철저하게 기획돼 만들어졌으며,
여러 면에서 완벽함을 보여야 하며, 팬들에게 그들은 대부분 미디어상에서 존재한다. 무엇보다, 팬들의 향유 방식에 큰 차이점이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과거 아담이 데뷔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의 진짜 주인공이 누구인지 파헤쳤던 것 과는 달리, 오늘날 가상 아이돌 팬들은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크게 관심이 없다. 케이팝 팬들이 커버댄스 비디오를
만들고 소셜미디어에서 공유하는 현상은 케이팝 팬들의 대표적인 향유 방식 중 하나인데, 이러한 관행은 가상 아이돌과 휴먼 아이돌이라는 차이 때문에 달라지지 않는다. 미디어 학자이자
문화 이론가인 존 피스크(John Fiske)는 항상 작품에 대한 다양한 해석 방식이 존재하며, 수용자의 참여가 작품이 완성되는 필수 요소라 주장했다(Fiske, 1989).
팬들의 변하지 않는 참여가 가상 아이돌과 휴먼 아이돌 사이 공통점을 강조해준다.
팬들이 커버댄스 비디오를 만들고 공유하는 현상은 대표적인 케이팝 팬덤의 향유방식 중 하나인데, 이러한 관행은 가상 아이돌과 휴먼 아이돌이라는 차이 때문에 달라지지
않는다. (사진출처: 셔터스톡)
2. 가상 아이돌의 가능성
2-1. 제작 이유와 전망
가상 아이돌들은 산업적 측면에서 강점을 가지며, 대니엘 블랙(Daniel Black)이 언급했듯 그들의 존재는 아이돌 제작에 있어 보다 필연적으로 발전된 형태라 볼 수
있다(Black, 2008). 혹자는 휴먼 아이돌들은 군백기를 포함한 공백기를 갖는 반면, 가상 아이돌들은 이러한 걱정 요소가 없다고 주장한다. 군백기가 많은 보이그룹의 부담인 건
사실이긴 하나, 사실 이는 가상 아이돌들의 증가와는 크게 관련이 없다. 먼저 많은 가상 아이돌들이 걸그룹으로 분류됨이 그렇다. 또, 필자가 개인적으로 가졌던 가상 보이그룹 플레이브의 팬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가상 아이돌에 주목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버닝썬 사건’과 같은 일련의 아티스트 스캔들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새로운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대한 케이팝의 적응력과 케이팝 내의 독특한 미디어 생태환경, 팬데믹이 바꾼 사람들의 디지털라이프스타일 등을 고려해 보면, 가상 아이돌은 앞으로 더 보편화될 거라 생각된다. 고민해야
할 점은 가상 아이돌이 한류라는 영역에서 어떻게 위치하고, 얼마나 공헌할 수 있느냐이다.
2-2. 가상 아이돌의 확장성
실제로 가상 아이돌은 케이팝, 나아가 한류의 지속적 성장을 뒷받침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 한류의 특징 중 하나는 다양한 분야의 대중문화가 융합돼 소비된다는 점이다. 케이팝 팬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아이돌이 출현한 드라마를 보며 열광하고, 드라마 팬들이 OST에 매료돼 케이팝을 찾아보고, 웹툰 소재가 드라마나 영화화되고, Weverse(과거 VLive)에서
스타들이 선보인 먹방 덕분에 한국 음식이 주목받는 현상 등은 한류의 독특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가상 아이돌 역시 음악에만 머물지 않고, 다양한 분야로 확장해갈 수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예컨대, K/DA(케이디에이)가 보여줬듯 게임 캐릭터가 케이팝 그룹의 가상멤버가 될 수 있고, 소녀리버스(Girl’s RE:VERSE) 프로젝트를 통해
데뷔한 가상 아이돌 그룹 피버스(Feverse)에서 볼 수 있듯이 휴먼 아이돌도 가상 아이돌로 재탄생할 수 있다. 특히 가상 아이돌뿐만 아니라, 현재 많은 케이팝 그룹들이 선보이고
있는 일련의 세계관들은 케이팝이 이제 음악 장르로만 머물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음악 한류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서는 음악, 웹툰, 게임 등으로 구분 지어진 영역이 아닌 이를
한데 아우르는 제도적, 정책적 뒷받침이 요구된다. 이를 통해, 서로 다른 영역의 팬덤이 한류라는 틀에서 한데 어우러지는 상승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며, 세계는 새로운 현상에 또 한
번 주목할 것이다.
버추얼 아이돌 서바이벌 <소녀 리버스>를 통해 데뷔한 5인조 가상 걸그룹 ‘피버스’ (사진출처: 카카오엔터테인먼트)
3. 마치며
대중 음악산업은 항상 기술의 발전과 함께 큰 변화를 겪어 왔다. 과거 MTV의 시작은 새로운 형태의 슈퍼스타 출연을 가능케 했고, 유튜브나 틱톡은 음악 생산ㆍ소비 전반에 걸친
변화를 이끌었다. 디지털 환경에서 가상 아이돌의 활동은 또 다른 변화를 예고하는 듯하다. 이런 점에서 케이팝은 강점을 갖는다. 예컨대, 팬데믹이 전 세계를 덮치고 음악산업이 큰
위기에 직면했을 때, 케이팝 그룹들은 새로운 기술의 접목과 함께 불과 3~4개월 안에 온라인 콘서트라는 새로운 양식을 선보여, 그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전통적 오프라인 콘서트가
갖는 지역적 한계를 뛰어넘었으며, 케이팝 공연이라는 개념을 확장시킨 예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케이팝은 확장성의 역사이다. 오늘날 가상 아이돌의 인기를 통해 케이팝이
앞으로 어디로 향할지 주목해야 할 것이다. 가상 아이돌의 존재와 다른 산업 간의 융합 가능성 등은 케이팝의 확장성이 이제 단순히 언어적, 인종적, 국가적 경계를 넘어가는 것뿐만
아니라, 음악 장르이냐 아니냐, 혹은 새로운 음악의 형태를 제시하고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를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상 아이돌이 새로운 형태의 음악 분야를 선점하며, 음악한류,
나아가 한류의 지속적인 성공에 어떻게 이바지할 수 있는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