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2
“장르, 국적은
중요하지 않고,
예술을 ‘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만화가부터 일러스트레이터, 예술 교육자, 전시 큐레이터, 뮤직비디오 감독까지. 그를 수식할 수 있는 단어는 많다. 그의 작품 세계는 장르에 한계를 두지 않고 예술을 확장한다.
RM의 <forever rain>과 노다 요지로(일본 록밴드 RADWIMPS 보컬) <Miracle>(최재훈 아트웍, 이와이 슌지 감독)의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로 유명한 최재훈 작가를 만나, 예술 교류의 확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_최재훈 작가
(RM <forever rain> 뮤직비디오 연출)
글_신윤희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연구원
Part 1. 소개 및 작품 활동
만화, 일러스트, 웹툰, 전시, 책 출간까지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셨는데요. 이렇게 다양한 작업을 하시게 된 계기나
동력이 있으셨나요?
제가 좀 특이한 게 ‘다양’하게 하고 있잖아요. 원래 만화 하면, 만화만 하게 되고. 애니메이션만 한다던가, 파인아트(fine art) 하는 사람은 파인아트만 하는데, 저는 다
하고 있으니까. 의도한 건 아니었고 최근 10년의 흐름이 영향을 끼쳤던 것 같아요.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만화가가 어떤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전시를 한다? 너무 이상한
일이었어요. 파인아트 하는 사람이 소설의 표지를 그린다? 이상한 일이고 멸시했어요. 편견과 통념으로 있었던 예술계의 이상한 권위, 그런 게 있던 시절이었죠. 그런데 2010년대 큰
변화 중 하나가 인터넷이잖아요? SNS로 넘어오면서 대중과 기획자와 작가가 몇 가지 허들을 건너서 만나는 게 아니라, 바로 만나게 된 거예요. SNS에서 우연히 어떤 작가를
봤는데, 별로 유명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작품이) 멋있고 내 취향이다? 그러면 좋아요도 누르고 팔로우도 누른단 말이에요. 일종의 직거래 개념이에요. 지금은 아이러니하게도 통념과
기준, 인맥, 학맥 상관없이 정말 (예술을) 잘해야 선택이 돼요. 마치 맛집 같은 거죠. 특히 그게 언제 더 강력해지냐면 해외에서 일할 때예요. 미국에서 저한테 연락이 왔는데
‘학교 어디 나왔어?’ 물어보지 않잖아요. 만화냐 일러스트냐의 장르 구분도 이제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냥 멋있는 걸 하면, ‘너 나랑 해볼래?’ 하면서 시작되는 거예요. 저는 운
좋게 역수입된 경우라고 생각하는데, 제 그림 풍이나 스타일이 사실 한국에서는 좀 덜 대중적이에요. 해외에서도 대중적인 작업은 아닌데 해외에는 다양한 문화들이 있으니까. 예를 들면
북유럽의 헤비메탈 밴드한테 연락이 온다던가. (웃음) 이런 식으로 돌파구가 생긴 거죠. 그래서 누군가를 가르칠 때나 수업할 때도 지금의 시대를 최대한 활용하라고 해요.
소개란에 ‘만화를 알리는 일도 하고 있다’고 돼 있던 데요. 만화를 알리는 일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크게 두 가지 일을 하고 있어요. 하나는 만화 커뮤니케이터로서인데요. 웹툰이 강세를 이루면서 웹툰의 미학도 중요해졌지만, 좋은 웹툰을 하려면 좋은 만화를 만들 줄 알아야 해요.
정확하게는 좋은 출판만화. 그런 면에서 예술만화 시장이 죽으면서 출판만화에 대한 미학 혹은 담론이 사라지고 있는 게 안타까워요. 그래서 출판만화 미학을 알리고, 담론 조성에도 신경
쓰고 싶어요. 또 하나는 교육인데, 제가 출판만화 워크숍을 10년째 하고 있거든요? 3~6개월 동안 출판만화를 하나 완성해 보는 거예요. 좋은 웹툰도 많지만, 웹툰이 담지 못하는
만화도 많아요. 예를 들면 무겁고 어려운 주제들은 출판만화로 나오기도 해요. 그런 면에서 다양한 만화, 다양한 작가들을 조성하기 위한 워크숍인 거죠.
Part 2. 글로벌 파트너와의 협업
말씀하셨던 ‘역수입’의 대표적인 사례일 것 같은데요. 노다 요지로의 <Miracle> 앨범커버에 만화를
그리고,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이와이 슌지 감독) 제작을 협업하셨어요. 작업은 어떻게 성사됐나요?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요지로한테 직접 DM으로 연락 왔어요. 제가 이 이후에 좋은 아티스트랑 일을 많이 했잖아요. 그 과정에서 어떤 루트로 연결이 됐냐? 한마디로 ‘인맥이냐, 학맥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사실 좋은 작업을 하면 좋은 일이 생기거든요? 심플해요. 실력이 없는데 어떤 연결점에 의해 좋은 작업을 하게 되는 경우는 이제 거의 없어요. 요지로한테 연락
왔을 때도 그냥 한마디였어요. ‘솔로 2집을 만화책으로 내고 싶은데 너랑 하고 싶다’ 처음에는 믿지 못했죠. 이런 연락이 DM으로 왔으니까. 그전에도 전조 현상들, 예를 들면
시카고 음악가의 일렉트로닉 앨범커버 작업, 미국의 인디 공포소설 삽화작업 같은 것들이 있긴 했죠. 시장을 국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요지로를 만나면서 자신감을 얻었죠.
그 후도 마찬가지였어요. ‘네 만화로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싶은데, 감독이 이와이 슌지야.’ “뭐라고?!” 하면서 되게 놀랐었죠. 지금으로 치면 (이와이 슌지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같은 사람이잖아요. 제 세대에게는 엄청난 거장이거든요. 그때 요지로가 했던 말이 ‘재훈이 네가 이미 이와이 슌지 감독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비슷한 감각과 감성을 가진
예술가들은 결국 만나게 되는 것 같다’고 하는 거예요.
엄청 감동적이었을 것 같아요.
엄청 감동적이었죠. 왜냐하면 저는 (당시에) 국내에서는 발을 붙이기 힘들었고, 해외를 기반으로 하니까 고민이 많았거든요. 그런 찰나에 큰 용기가 됐죠.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감독님도 완전 수평적으로 저를 대했거든요. 이때 저도 작가나 클라이언트에 대한 편견이 없어졌어요. 내가 먼저 바뀌면 주변도 바뀌고, 그렇게 만나게 돼 있더라고요.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작가들은 결국 나와 함께하게 돼 있고, 클라이언트도 그걸 알아줄 거라는 태도로 지금도 작업하고 있죠.
노다 요지로(illion)의 <Miracle> 뮤직비디오
(그림을 클릭하시면 해당 뮤직비디오로 이동합니다)
언어도 다르고, 작업방식, 문화적 차이도 당연히 있었을 텐데요. 그런 것들을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글로벌 파트너와
협업하는 노하우 같은 게 혹시 있으시다면요?
이때 강하게 느꼈던 거는 예술에 대한 사랑, 애정으로 진짜 다 통했어요. (웃음) 언어는 서로 안 됐지만, 장벽은 하나도 없었어요. 요지로랑은 번역기 영어로 대화했고, 이와이 슌지
감독님은 감독님의 영화사랑 일했는데, 통역사 통해서 메일이 한글로 와요. 그런데 항상 감동적이었고 울컥했던 거는 끝없는 예술에 대한 애정을 느꼈어요. 그 진정성이라는 게 작업에
대한 애정을 담으면 사실 이 사람이 어떤 태도로 임했는지 다 아니까. 대충 하면 당연히 상처받고 아쉬울 거잖아요. 또 이건 일종의 팁인데, 돈 얘기는 그냥 처음에 다 해버리고
끝내요. 나머지는 너무 즐거운 시간밖에 없는 거예요. 이게 한국이랑 다른 거예요. 불편할 수 있는 것들은 처음에 세팅함으로써 다 없애버린 거죠.
SNS 얘기를 해주셨는데요. 오늘날은 SNS 플랫폼을 통해 작가들끼리 교류하고, 협업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특히
글로벌 작가들과 교류하는 한국 작가들이 많아졌다는 점에서 ‘순수예술의 한류’라고 이름을 붙인다면, 앞으로 이러한 ‘씬’은 어떻게 재편될 것 같으신가요?
한국 콘텐츠가 여러모로 전 세계에서 핫하잖아요. 유행은 있지만, 경계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일하면서 느낀 건 ‘네가 한국 작가니까 너랑 하는 거야’는 없어요. 직거래가
발전하면서 한국이냐 미국이냐 칠레냐 이런 건 최소한의 정보인 거예요. 칠레에서 ‘어떤’ 예술을 하느냐가 더 중요한 거죠. 제가 몸소 경험한 바는 한국은 내수시장이 약하기 때문에
내부 순환이 안 돼요. 그런데 어떻게 모든 장르에서 핫하냐? 내수시장이 약해서예요. 한국에서는 역수입을 좋아하죠. ‘맨부커상 탔대.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전시했대.’ 사실
내수시장이 크다는 건 밖에서 온다는 뜻이거든요? 내수시장이 없다면 밖에서 올 필요가 없어요. 더 좋은 시장은 밖에 있으니까요. 한국은 각각의 아티스트가 바빠요. (웃음) 열심히
해야 해외에서도 눈에 띄거든요. 미국이나 유럽, 일본은 내수시장이 강하니까 잘하는 이들은 많은데, 새롭지는 않아요.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내수시장이 안정적일수록 고착화돼 있어요.
그런데 한국 작가들을 봤더니 막 뒤섞어놓고 새롭고 뭔지 모르겠어. (웃음) ‘재밌다, 신기한데? 같이 하고 싶다’가 된 거죠. 얼마나 잘하고 특별한 걸 하느냐가 핵심이에요.
예전에는 정말 뛰어나더라도 그걸 보여주려면 많은 허들을 거쳐야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내가 열심히 해서 잘하잖아요? 그걸 SNS에 올리면 누군가가 갑자기 좋아하는 그런 시대예요.
Part 3. 대중문화와 순수예술의 결합
작품에 기호와 이미지를 많이 활용하고 계신데요. 이러한 미학적 시도는 순수예술을 만화로 풀어내는 시도로도 읽히는데,
대중문화(만화)를 통해 이러한 가능성이 실현될 수 있다고 보시나요?
저는 완전히 뒤섞이는 시대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그 한가운데에 있고. 그러니까 순수예술의 어떤 요소들을 만화에 가져오는 것과 대중문화에 있는 요소를 순수예술로 가져오는 것 중에
닭이냐, 달걀이냐 했을 때 먼저는 없거든요? 시대정신 같은 건데. 그 한복판에 있는 사람들은 뭘 먼저 하고 싶어 하지 않아요. 뒤섞여 있거든요. 그런 면에서 저도 당연히 이거는
대중문화야, 이거는 순수예술이야 나눠서 작업하지 않아요.
RM, NCT 등 대표적인 한류 스타와의 작업(애니메이션, 디렉팅, 아트웍 등)도 같은 의미에서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렇죠. 이제는 경계가 모호해졌어요. 대중적이냐 아니냐는 차후 문제인 것 같아요. 얼마나 재밌고 좋으냐의 문제죠. 흑백 작업을 하면서 우울, 외로움에 관한 얘기를 하고,
애니메이션까지 하는 사람이라고 했을 때 그런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사실 많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남들과 다른 걸 하더라도 이 사람만의 세계가 있고, 이게 참 재밌어. 그래서
매력적이야. 그럼 바로 연결된다는 뜻인 거죠. 사실 작가들이 휩쓸리면 안 되는 거예요. 지금 인기 있는 게 A니까 다 같이 A를 할 필요가 없고, A부터 Z까지 있으면 되는 거죠.
여기에는 용기도 필요하겠지만, 지금은 Z를 하는 게 오히려 유리해요. 전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함께 소통하니까요.
<NCTmentary>에 들어간 애니메이션 작업
(그림을 클릭하시면 해당 영상으로 이동합니다)
예술을 잘하는 사람이 대중문화적인 시도를 하기는 비교적 쉬워 보이는데, 대중문화를 하던 사람이 예술과 결합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편견도 있잖아요.
좋은 질문이네요. 작가가 된다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뭘 할 수밖에 없는지를 인정하는 데 있어요. 내가 뭘 하고 싶은지는 오히려 두 번째예요. 대중적인 걸 하고 싶은 사람이
실제로 엄청 대중적인 사람이라면 운이 좋은 거예요. 지향과 성향이 일치하는 경우는 10명 중에 1~2명이에요. 나머지는 다 분리돼 있고, 이것을 어떻게 봉합하느냐에 평생을 바쳐요.
그런데 인기 있고 돈이 되는 게 좋은 거라는 인식이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항상 한국의 문제는 다양성이에요. 다양성이 모자라요. 그게 담론 조성에서 집중해야 할 요소죠.
대중적이고 돈이 되는 것은 가만히 있어도 다들 얘기하거든요. 그런데 대중적인 것의 저변과 기반에는 다양한 좋은 예술이 있어요. BTS, 봉준호 감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지금
이 순간에도 시선은 안 가지만 좋은 예술을 하는 이들이 많을 텐데, 그들을 돌아보는 게 국가나 문화 씬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RM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이 문화 씬의 마이너에 위치한 저 같은 사람은 그걸 느껴요. 저한테 연락을 준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그걸 알아요. (웃음)
Part 4. RM이 미술계에 기여한 것
RM <forever rain> 뮤직비디오 연출도 그렇게 ‘직거래’로 이어지게 됐나요?
그때는 (BTS가) 한참 UN에서 연설할 때였으니까. 메일을 받고 놀랐죠. 아무리 솔로 앨범이라고 해도 (BTS가) 저한테 일을 주니까. 요지로부터 시작된 SNS, 그러니까 경계를
넘어서 예술가와 교류하는 길의 정점이었죠. 여기까지 와버려? (웃음) 과거 요지로가 했던 말과 연관돼서 <Forever rain>을 받았을 때, 딱 느꼈죠. 그 가사를
보시면 알겠지만 어떤 외로움에 관한 거거든요. RM의 고민이 담겨 있는 노래예요. 또 이렇게 비슷한 감성,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만나는구나. 요지로와 이와이 슌지 감독님,
그리고 RM한테 고맙다.
<forever rain> 뮤직비디오 속 RM
(그림을 클릭하시면 해당 뮤직비디오로 이동합니다)
작업하시면서 가장 중점에 뒀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가사요. 뮤직비디오 작업은 스토리보드를 짤 때 초 단위로 짜야 해요. 리듬 편집점을 체크하면서 스토리를 짜거든요. 어떤 한 가수가 자기의 모든 걸 쌓아서 한 점의 정수로 담아놓은
노래와 가사를 완전히 해체해야 해요. 그 가사를 너무 노골적이고 설명적으로 담으면 재미없잖아요. 그래서 시적인 의미를 넣으려고 했어요. RM이 빗길을 혼자 걷고 있어요. 물이 고여
있는 길을 걷거든요? 그리고 향해 가는 게 검은 태양이에요. 그 사람의 외로움과 꿈에 대한 복합적인 요소를 상징적으로 넣은 거거든요. 왜 혼자 우산을 쓰지 않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 우산을 쓰고 있는지. 이런 것들이 가사랑 다 연관돼 있어요.
인상적인 에피소드도 있으셨을까요?
제가 처음에는 좀 (표현을) 순화해서 했어요. 아무래도 아이돌이니까. 그런데 오히려 (RM의) 회사 측에서 더 과감하게 해달라고 했죠. 그러고 나서 바뀐 것 중 하나가 그 우산 속에 있는
사람들이 ‘괴물’이잖아요. 과감하게 표현했죠. 오히려 더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forever rain> 뮤비 속 사람들의 얼굴
직접적인 기부부터 대중의 관심 환기까지 RM이 미술계에 기여하고 있는 부분은 구체적으로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RM이 끊임없이 시선 밖에 있는 예술가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와의 작업도 마찬가지였고. 물론 시선의 한복판에 있는 예술가와도 너무 잘하지만.
그 사람의 취향과 별개로 RM이 하는 역할들이 있잖아요. 보면 의외의 선택들이 되게 많거든요. 예를 들면 가장 핫하고, 뛰어나고, 유명한 사람과만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잖아요.
그런데 그렇지 않단 말이에요. 약간은 잊혔지만 되게 잘하는 아티스트랑 하기도 하고. ‘맞아 이런 사람도 있었지’, ‘저런 예술가도 있었지’라고 끊임없이 끄집어내면서 보여주는 역할을
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탁월한 시선과 안목을 갖고 있죠. 항상 메이저 전시만 다니는 것도 아니고, 수면 아래, 시선 밖에 있는 작가들의 전시도 많이 다니고. 그런 거 보면 어떤
정책이나 문화 씬에서도 생각할 부분이 크다고 생각해요. 사실은 그들이 해야 할 일이기도 한 거죠. 모두가 A를 얘기하고 있을 때, ‘X랑 Y도 좋아. 한번 봐봐’라고 해주는 역할.
RM이 그런 면에서 정말 대단하죠.
오늘날 미술계에는 한류(스타)가 직접 작품활동에 참여하거나 매개하는 일도 많아졌는데요. 직접적인 관심을 유발한다는
점 외에, 한류가 미술계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한류 스타가 위치성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고 했을 때 언제나 다양성을 향해 가야 하거든요. 사실 수많은 좋은 작가들이 있는데, 여러 통념과 허들에 의해서 눈에 띄지 못하는 작가들이
있어요. 그들을 드러내는 일을 영향력 있는 한류 스타들이 할 수 있다면 좋겠죠. 또 만약에 작품활동을 하는 한류스타가 전시를 한다면, 그 영향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를 생각해
보면 좋은 거죠. 2인전 혹은 3인전을 하는데, 메이저한 사람과 아직은 눈에 띄지 않은 사람과 함께 한다든가. 이런 식의 퍼포먼스는 전시가 입체적으로 보인다는 점에서도 좋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관심이 유지되기 위해서 어떤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할까요?
만약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파인아트적으로 만화를 전시한다고 하면 많은 허들을 거쳐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좋고 재밌는데, 단지 파인아트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도 그게 안 되는 예술이
많아요. 미국이나 유럽은 퐁피두나 루브르나 대형 미술관에서 이미 몇십 년 전부터 그런 전시를 해왔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정책적으로 할 수 있는 건 너무 많죠. 예를 들어 기획을
한다면, 한류스타랑 엮을 수도 있고. 한류 스타가 협업했던 예술가들이 되게 많잖아요. 레드벨벳이나 에스파가 했던 앨범커버에 누군가의 그림이 들어갔을 거고, 또 세븐틴의 어떤 작업에
애니메이션이 들어갔을 거고. 그들의 작품을 시립미술관에서 전시해보는 거죠. 작업 자체도 재밌는데, 이게 사실은 돈이 안 되는 것도 아니거든요. (웃음) 언제나 대중적이고 메이저한
무언가는 흘러가요. 왜냐하면 거기에 돈이 있기 때문에. 그 반대편에 있는 것들은 그렇지 않거든요. 이런 것들을 어떻게 보듬으면서 엮을 것인가? 지원의 핵심은 거기에 있다고 봐요.
오랜 기간 작업을 이어오셨는데, 오늘날 예술계의 변화 지점을 발견하신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명품브랜드에서 파인아트랑 콜라보를 많이 하잖아요. 일종의 권위 때문이거든요? 설치예술 작가와 에르메스나 샤넬이 협업한다면 작가와 명품의 가치가 동시에 올라가요. 만화는 아직 그런
느낌이 아니에요. 그냥 재밌고, 소비하기 쉬운 거지. 그런데 유럽이랑 미국이랑 일본은 그걸 하고 있어요. 권위 있는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만화가가 전시하고 명품이랑 콜라보를 해요.
제가 몽블랑(Montblanc)이랑 글로벌 캠페인을 했거든요. 그게 몽블랑 본사(독일)에서 연락이 온 거에요. 우주 정거장에 사는 선장의 인터뷰를 보내줄 테니까, 그 인터뷰를
베이스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달라는 거였어요. 인터뷰의 내용은 “우주에 떠 있으니까 외롭다. 지구가 그리워지고 지구의 가치를 알겠어. 하지만 이 우주는 아름답지” 이런 내용이거든요.
외로움은 제가 계속 관심을 뒀던 주제였어요. RM이랑 했을 때도 그렇고. 이게 또 이렇게 연결이 되네? 그리고 나중에 작품 런칭할 때, 그때 서야 몽블랑 코리아로 연락이 간
거예요. 옛날에는 어떻게든 한국 지사에서 (한국 작가를) 오퍼 넣거나 그래도 안 됐을 텐데. 지금은 다이렉트로 작가에게 연락하고, 뒤늦게 지사에서 알게 되는 이런 맥락. 그렇게
변해가고 있어요. 클라이언트든, 작가 간의 교류든. 그런데 이거를 기관이나 정부 혹은 어떤 씬이나 미술관에서 뒤늦게 쫓아가지 말고, 앞서가면서 변화를 수용한다면 훨씬 더 좋은
방향의 씬이 만들어질 거라고 생각해요.
몽블랑 ‘스타워커(Star Walker)’ 글로벌 캠페인
문화 씬에 대한 미래 전망과 제언을 부탁드립니다.
저는 웹툰이 아니라, 출판 만화를 하고 있고. 파인아트를 하더라도 팬 작업, 흑백 작업을 하고. 유화, 캔버스 작업이 아니라 애니메이션도 특이한 패턴으로 하고 있죠. 그런 면에서
마이너한 특성이 있어요. 그런데 이제는 마이너와 메이저의 경계가 없어지고, 얼마나 좋은 예술을 하느냐가 중요해요. 세계를 기반으로 교류하기 때문에 내가 마이너하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웃음) 봉준호 감독이나 BTS 등 여러 가지 흐름의 저변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다양한 예술이 있어요. 다양한 예술이 있기에 한류도 있는 거죠. 그러니까 그것들을
간과하지 말고, 시선을 끊임없이 주변과 아래로 돌아보는 게 필요해요. 그러면 당연히 한류라는 흐름도 더 길어질 거거든요. 예술에도 유행과 흐름이 있잖아요. 그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누구에게 시선을 보낼 것이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