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세기 중반 붉은 벽돌과 석조 건물이 늘어선 토론토 다운타운의 디스틸러리 디스트릿(Distillery District), 빅토리아 시대의 흔적을 간직한 동시에 현대적 예술의 중심지로 사랑받는 이곳의 알타 갤러리(Arta gallery)에서 지난 9월 11일 한국무형유산주간 특별전 '한국 여성의 어느 하루(Once Upon a Day of Lady Kim with K-craft)'의 막이 올랐다.

< 특별전이 열리는 토론토 디스틸러리 디스트릿 - 출처: 통신원 촬영 >
23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가상의 인물 레이디 김(Lady Kim)의 하루를 따라가며 한국 여성의 일상 속 전통 공예와 규방 문화를 조망한다. 국가유산청과 국가유산진흥원이 공동 기획한 이번 전시는 한국의 무형유산을 캐나다에 알리고 현지 관람객과의 교류를 확대하기 위해 마련됐다. 갤러리 문을 열고 들어서면 국가무형유산 침선장 기능보유자 구혜자 선생의 작품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돌복, 성년복, 수의 등이 반가 여성의 일생의 중요한 순간들을 증언하듯 관객 앞에 펼쳐진다. 특히 수의의 옷고름이 일반 한복과 반대 방향으로 매어진 사실을 전시 감독이 설명하자 관객들은 숙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전통 속 깊은 의미를 새기듯 귀를 기울였다.

< 한복을 통해 여성의 일생을 보여주는 전시 - 출처: 통신원 촬영 >
두 번째 공간 '내실, 그녀의 공간'에서는 거울, 장식함, 옷걸이 등 일상적인 생활용품이 전시됐다. 조혜영 전시 감독은 "이곳은 여성이 자신을 가꾸고 일상을 정리하던 사적이고 정체된 세계를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말하며 생활 도구 속에 응축된 여성의 감성과 습관, 개인적 실천의 의미를 짚었다. 세 번째 공간 '창작의 공간'은 바느질, 자수, 매듭 공예로 채워졌다. "가정과 공동체의 기억이 세대를 거쳐 이어지는 장"이라고 말하는 조 감독의 설명처럼 예술로 승화된 여성의 일상 풍경이 관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특히 한국의 나무과 나전칠기를 활용해 어머니상을 표현한 김덕영 선생의 작품은 전통적 소재와 현대적 감각을 결합해 과거의 기억과 오늘의 감성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 여성 일상 속의 전통 공예와 규방 문화를 보여주는 전시 - 출처: 통신원 촬영 >
네 번째 공간에는 4대째 이어온 장인이 손수 대나무를 쪼개 명인 줄을 감아 만든 대나무 발이 전시됐다. 단순한 생활 도구 같지만 세대 전승과 장인 정신의 상징으로 생활과 예술의 경계를 잇는 가치가 돋보였다. 마지막 저장 공간은 반짇고리, 혼례함, 빗접 등 다양한 수공예품이 자리했다. 조 감독은 "단순한 수납 도구, 수납공간을 넘어 가족을 돌보던 여성의 삶의 기억을 전승하는 문화적 장치"라고 덧붙였다.
이번 전시는 국가무형유산 보유자와 전승 공예가들의 작품 91종 192점이 전시됐다. 침선장 구혜자 보유자의 전통 한복, 홍정실 보유자의 혼례함, 서신정 보유자의 반짇고리, 김극천 보유자의 빗접 등은 한국 장인 정신의 정수를 보여줬고, 김덕영, 이혜미 작가의 현대적 감각이 더해진 작품들은 많은 캐나다인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현지 관람객들은 작품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으며 질문을 던지며 감탄을 쏟아냈다.
조혜영 전시감독은 "이번 전시를 통해 단순히 전승자의 뛰어난 기예를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한국 여성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통해 캐나다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서사를 강조하고 싶었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킨 <김씨네 편의점>이 탄생한 토론토였기에 레이디 김의 이야기가 더욱 와닿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 김덕영 선생의 작품 앞에 선 조혜영 전시감독 - 출처: 통신원 촬영 >
개막식은 대금, 피리, 해금 연주로 시작해 레이디 김의 하루를 형상화한 퍼포먼스로 이어졌다. 한복 입는 과정을 무용과 결합한 공연은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조성준 온타리오주 노인복지부 장관, 김영재 토론토 총영사, 첸 신(Chen Shen) 로얄 온타리오 박물관 수석 큐레이터, 토론토 한인회 김정희 회장 등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이번 전시는 단순한 전시를 넘어 한국과 캐나다가 상호 이해와 신뢰를 쌓고 공동의 번영을 향해 나아가는 문화교류의 장이 될 것"이라며 "한국 무형유산의 장인 정신과 미학을 직접 체험하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궁중 의례나 왕실 문화가 아니라 소박하면서도 품격 있는 일상의 공예를 통해 한국 여성의 삶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는 특별했다. '일상이 곧 일생'이라는 기획 철학은 관람객들로 하여금 과거와 현재, 한국과 캐나다를 잇는 연결점을 발견하게 했다. 또한 한국 공예의 전통적 가치와 현대적 창의성을 나란히 보여주며 전통이 고정된 유물이 아닌 현재진행형의 문화임을 환기했다.
전시 '한국 여성의 어느 하루'는 단순히 회고가 아니라 오늘날 다문화 사회 속에서 한국 공예와 여성의 삶이 어떻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며 이야기를 통해 캐나다 관람객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있다. 디스틸러리의 고풍스러운 건물 속에서 한국의 여성들이 살아낸 이야기를 전한 이번 전시가 현지인들에게 한국 무형유산의 진정한 매력을 전하는 동시에 문화 간 깊은 연대를 만들어가는 또 하나의 발걸음이 되기를 기대한다.
사진출처
- 통신원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