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 한국 문화원 전시를 통해 본 문화 전승의 새로운 모델
연말이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의심할 여지 없이 한국 콘텐츠의 세계적인 열풍이 거세다. 넷플릭스(Netflix)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가 그래미 어워드(Grammy Awards) 후보로 지정되고, 박찬욱 감독의 신작 영화 <어쩔수가없다(NO OTHER CHOICE)>가 미국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Academy Award for Best International Feature Film) 부문의 한국 출품작으로 선정되는 등, 한국 콘텐츠는 이제 이변이 없는 한 세계 문화 시장의 주류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이러한 거대한 흐름 속에서 헝가리의 부다페스트(Budapest)에서 열린 한 작은 전시는 이 열풍이 나아갈 다음 단계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한국의 메아리, 헝가리의 손끝에서 피어나다
지난 12월 10일 주 헝가리 한국 문화원에서 주최한 연합 작품 전시 '에코스 오브 코리아 인 헝가리(Echoes of Korea in Hungary)'의 막이 올랐다. 이번 전시는 문화원이 개원한 2012년 이래로 운영되어 왔던 다양한 문화 강좌들을 수강한 학생들과 이를 가르쳤던 강사들의 작품을 한데 모은 첫 번째 공식 전시회다. 현지 수강생들이 이제는 '아마추어'를 넘어 '아티스트'로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전시는 한국 전통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네 가지 분야, 즉 민화, 서예, 조각보, 그리고 수공예(한지와 매듭)의 작품들을 엄선하여 선보였다. 민화 속 호랑이는 헝가리 작가의 손끝에서 새로운 표정을 얻었고, 자투리 천을 이어 만든 조각보는 기하학적인 추상화처럼 재탄생했다. 한국의 전통 미학이 헝가리의 감성과 만나 어떻게 새로운 울림을 만들어 내는지를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 '에코스 오브 코리아 인 헝가리(Echoes of Korea in Hungary)' 전시장 풍경 - 출처: 통신원 촬영 >
문화는 어떻게 전파되는가-댄 스퍼버(Dan Sperber)와『문화에 대한 설명: 자연주의 접근(Explaining Culture: A Naturalistic Approach)』
프랑스의 저명한 문화 인류학자이자 진화심리학자인 댄 스퍼버는 1996년에 발표한 그의 저서 『문화에 대한 설명: 자연주의 접근(Explaining Culture: A Naturalistic Approach)』를 통해 문화가 단순한 복제(Replication)를 통해 퍼진다는 기존의 밈(Meme)이론에 도전한다. 그의 표상의 전염학(Epidemiology of Representations) 이론의 핵심은 문화적 아이디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인간의 인지 과정을 거치며 끊임없이 변형되고 재창조(Transformation) 된다는 점이다. 스퍼버는 이러한 문화의 변형과 재창조를 문화 전파의 가장 성공적인 결과물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Echoes of Korea in Hungary' 전시는 단순한 한국 문화를 복제하는 결과물이 아니다. 한국인 강사에게 한국 전통 예술을 배운 헝가리인 학생이 이제는 직접 스승이 되어 서예, 조각보 등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그 결과물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한국 문화가 헝가리인의 관점에서 주체적으로 해석되고, 현지의 인지·사회 환경 속에서 재탄생했음을 증명했다.
'학생이 스승으로', 문화적 면역 체계의 형성
이러한 학생이 스승이 되는 현상은 스퍼버가 주장한 문화적 전염병학 모델의 가장 발전된 단계에 해당하며, 한국 문화 확산의 지속가능성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한국에서 유입된 서예나 조각보 등의 문화적 아이디어를 문화적 항원(Culturl Antigen)에 비유할 때, 헝가리 현지 문화계는 이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현지인이 한국 전통 예술을 직접 배워 다른 수강생들을 교육시키고 전파하는 있는 이 과정은 헝가리 문화계가 해당 항원을 자체적으로 해석하고 소화하여 스스로 문화적 항체(Antibody)를 만들어 낸 것과 같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서예 강좌다. 2013년 한국인 사범의 지도로 시작된 이 강좌는 이제 그의 제자들이었던 5명의 헝가리인 강사가 70명이 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수준으로 확장됐다. 수강생들이 결성한 전문가 그룹 '문방사우(文房四友, Munbangsau)'는 이미 6회의 전시를 성공적으로 개최했으며, 그 실력을 인정받아 서울 서예 박물관에 2026년 공식 초청을 받았다.

< 헝가리 수강생들의 손끝에서 재탄생한 'Echoes of Korea in Hungary' 전시의 예술 작품들과 관람객 전경 - 출처: 통신원 촬영 >
이러한 현지 주도적 문화 전승(Cultural Transmission)은 한국 문화가 헝가리 사회의 일부로서 뿌리내리고, 지속가능한 문화 교류를 위한 '문화적 면역 체계'를 형성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분기점이라 할 수 있다. 한국 문화의 진정한 세계화는 단순히 더 많은 한국 콘텐츠들을 수출하는 것을 넘어, 부다페스트의 사례처럼 현지에서 자생적으로 문화를 이끌어갈 새로운 스승이 될 인물들을 키워내는 데 있다. 일방적인 문화 전파를 넘어 현지인들이 스스로 한국 문화를 재창조하고 확산시키는 플랫폼을 만들어주는 것. 이것이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지속가능한 문화 교류로 나아가기 위한 우리의 다음 과제임을, 헝가리의 이 작은 전시는 우리에게 소중한 '메아리'가 되어 알려준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Sperber, Dan (1996). 『Explaining Culture:A Naturalistic Approach』. Oxford: Willey-Blackwell Publish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