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한 케이팝 밴드의 말레이시아 공연 관람 에티켓 논란이 온라인 공방을 거쳐 한국 제품 불매 운동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논란은 지난 1월 31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밴드 데이식스(DAY6)의 데뷔 10주년 월드투어 콘서트에서 시작됐다. 당시 한 한국인 관람객이 반입이 금지된 고성능 망원렌즈 장착 디지털 카메라, 이른바 ‘대포 카메라’를 무단 반입해 공연을 촬영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촉발됐다. 이후 말레이시아 누리꾼들은 공연 관람 태도를 문제 삼으며 비판을 제기했고, 대포 카메라로 공연을 촬영하던 한국인 관람객의 옆모습 사진이 온라인상에 공유되면서 논쟁이 확산됐다.
초기에는 공연 관람 매너를 둘러싼 지적에 머물렀으나, 온라인 설전은 점차 한국과 동남아시아를 상대로 한 차별적 발언이 오가는 비방전으로 번졌다. 이 과정에서 “한국 대 동남아시아 형제자매(SEAblings vs South Korea)”라는 해시태그가 확산되며 갈등 양상이 심화됐다. ‘씨블링(SEAbling)’은 동남아시아(Southeast Asia·SEA)와 형제자매(Sibling)를 결합해 만든 신조어로, 동남아시아 온라인 이용자들 사이에서 사용되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소셜미디어 스레드(Threads) 사용자들은 인공지능(AI) 생성 이미지를 활용해 관련 게시물을 공유했다. 일부 이용자들은 “말레이시아 메르데카118이 한국 롯데월드타워보다 높다”, “아세안인들이여, 한국보다 예의 바른 국가의 제품을 사용하자”, “아세안이 함께 삼성 제품 불매운동을 하자” 등의 글을 게시하며 참여를 독려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한국 배우들이 광고하는 제품이 현지에서 높은 인기를 얻고 있어, 일각에서는 이번 논란이 실제 소비 움직임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 한류 스타가 말레이시아에서 광고하는 제품 – 출처: 통신원 촬영 >


< (좌)말레이시아 메르데카118과 롯데월드타워를 비교한 게시물, (우)한국 제품 불매운동 게시물 –
출처: (좌)현지 스레드 사용자 계정(@sscbatam), (우)현지 스레드 사용자 계정(@duck.1788485) >
디지털 공간에서 드러난 동남아시아에 대한 편향과 인식 구조
말레이시아에서 한류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이번과 같은 규모의 온라인 갈등은 2015년 아이돌 그룹 비원에이포(B1A4) 사건 이후 처음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2015년 1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아이돌 그룹 비원에이포(B1A4)의 팬미팅 행사에서는 멤버들과 무슬림 소녀 팬들이 포옹하는 장면이 공개되며 논란이 불거졌다.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는 공공장소에서의 애정 표현이 엄격히 제한되는 만큼, 해당 장면이 종교적·문화적 규범을 위반한 행위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당시 논쟁은 한류 콘텐츠와 현지 문화 규범의 충돌이라는 맥락에서 전개됐다.그러나 이번 논란은 2015년 사례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이 한국 사회 전반에 존재해 온 동남아시아 문화에 대한 낮은 이해 수준과 X(옛 트위터), 스레드(Threads) 등 온라인 소셜미디어 환경이 결합하면서 갈등이 증폭된 측면이 크다고 지적한다.
사건의 출발점은 공연장 내 금지 품목 반입 문제였지만, 이후 논쟁 과정에서 동남아시아를 하나의 동질적 공간으로 일반화하거나 원색적인 비판이 이어지며 갈등이 확대됐다. 일부 한국 누리꾼들의 게시글에서는 동남아시아를 경제적으로 덜 발전한 지역으로 비하하거나 유색인종이라는 인종적 범주로 타자화하는 표현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 같은 현상은 학계의 연구 경향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동안 국내 학계에서 동남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부족했을 뿐 아니라, 연구 역시 문화적 이해보다는 소비시장이나 경제적 가치 측면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여 왔다는 것이다. 디지털 공간에서 나타난 인종적·경제적 위계 담론 역시 우연한 사건이라기보다 동남아시아를 경제 발전 단계나 시장 가치로 환원해 온 지식 생산 구조와 연결돼 있다는 분석이다.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AsIA지역인문학센터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23년 8월까지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에 등재된 국내 학술지 가운데 제목에 ‘한류’를 포함하고 아시아 지역·국가 또는 아시아인을 다룬 논문은 총 464편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이 중 약 350편이 중국과 일본을 대상으로 한 연구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베트남 관련 연구가 그 뒤를 잇지만, 이 역시 경영학이나 관광학 등 소비시장 중심의 사례 연구가 대부분이며, 기타 동남아시아 국가를 다룬 연구는 매우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편향적 연구 환경이 사회 인식 형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지식 생산과 공적 담론이 사회 구성원의 인식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학계 역시 지역 이해의 균형성을 확보하기 위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아시아 내 한류에 대한 국내 연구 현황 – 출처: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AsIA지역인문학센터' >
동남아시아 담론 속 한국 문화 인식
반면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에서 제기되는 한국 비판 담론의 초점은 성형 문화, 인종차별 문제, 높은 자살률 등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역사 인식 논란에 맞춰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비판이 형성된 배경으로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한국 문화, 특히 전통적·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와 공유의 기회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한국 대중문화는 널리 소비되고 있지만, 그 이면의 사회·문화적 맥락을 접할 통로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말레이시아에서 개최되는 한국 관련 행사들은 문화 이해 증진보다는 산업적·경제적 홍보 성격이 강한 경우가 많다. 한국 제품을 소개하거나 케이팝(K-pop)과 한류 콘텐츠 중심의 프로그램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반면, 한국의 전통문화와 가치, 역사적 맥락을 조명하는 문화 행사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이 같은 문화 교류의 불균형은 한국을 콘텐츠 중심의 이미지로만 인식하게 만들고, 사회적 문제나 단편적 현상이 한국 사회 전체의 특징처럼 과도하게 부각되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갈등 완화를 위해 양측 모두 상대 문화를 보다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문화의 의미와 가치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할 필요가 있으며, 동남아시아 역시 한국 문화를 대중문화 차원을 넘어 다층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경제·산업 중심의 교류만으로는 상호 이해를 충분히 구축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공적 영역에서 문화적 교류와 관심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상대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될 때 비로소 상호 인식의 간극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래로부터와 위로부터: 한류 확산의 상호 연결 필요성
이러한 점에서 중요한 것은 '위로부터의' 행동 변화다. 그동안 한류는 주로 아래로부터의 대중행동을 통해 확산된 문화 현상으로 이해되어 왔다. 대중에서 시작된 연대가 세계적으로 확산된 것은 소중한 자산이지만 이번 사태는 어느 한 방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아래와 위 양쪽에서의 문화적 활동이 만나 서로 연결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아래로부터의 한류가 갖는 한계 속에서 학계, 정부 기관이 대중과 연계한 문화 교류 활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차별과 혐오보다는 전 세계를 하나로 묶어준 한류의 의미, 연대의 가치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AsIA 지역문화센터 웹사이트, '2024 아시아 한류의 역동성 1강', http://snuachklhc.snu.ac.kr/?p=9558
- 한아세안센터 홈페이지, https://www.aseankorea.org/main/centerStatistics/centerStatistics_list.do
-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2025 해외한류실태조사 결과보고서(제14차)」,
https://www.archivecenter.net/hallyuresearch/archive/collection/ArchiveCollectionView.do?con_id=3490
- 《Malay Mail》 (2026. 2. 22). SEAblings vs Knetz: How a K-pop concert in KL triggered online skirmish between Southeast Asian and South Korean fans,
https://buly.kr/6iikwfN
- 《Malaysiakini》(2026. 2. 19). Pelajaran dari pertikaian KNetz dan Seablings dalam alam maya, https://www.malaysiakini.com/columns/768445
- 《Borneo Bulletin》 (2026. 1. 26). South Korea-Malaysia trade soars to USD27.42B,
https://borneobulletin.com.bn/south-korea-malaysia-trade-soars-to-usd27-42b/
- 말레이시아 스레드(@duck.1788485), https://www.threads.com/@duck.1788485
- 말레이시아 스레드(@ams_branded), https://www.threads.com/@ams_branded
- 인도네시아 스레드(@sscbatam), https://www.threads.com/@sscbat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