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주요 쇼핑몰과 도심 거리를 둘러보면 2월 말에 접어든 현재까지도 화려한 붉은 장식이 이어지며 설 명절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싱가포르 전역에는 설 명절(Lunar New Year)을 기념하는 장식과 행사가 이어지며 명절의 여운이 도시 전반에 남아 있다. 2026년 ‘붉은 말의 해’를 맞아 역동적인 기운을 상징하는 조형물들이 곳곳에 설치됐고, 싱가포르 특유의 설 풍경인 라이언 댄스(사자춤), 귤 교환 문화, 쇼핑몰별 띠별 운세 전시가 시민과 관광객의 발길을 동시에 끌어모으고 있다. 명절이 지나서도 축제 분위기를 길게 이어가는 점은 다문화 사회인 싱가포르의 특징적인 명절 문화로 평가된다.
싱가포르의 설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면은 강렬한 북소리와 꽹과리 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라이언 댄스 공연이다. 화려한 사자 탈을 쓴 무용수들이 펼치는 사자춤은 현지 설 축제의 핵심 행사로 자리 잡고 있다. 사자는 용맹함과 길상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행운을 불러온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 때문에 설 기간 동안 일반 가정집은 물론 아파트 단지, 상점, 호텔, 기업 사무실, 정부 기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간에서 사자춤 공연이 이어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 싱가포르 거주지에서 진행되는 사자춤 이벤트 - 출처: 통신원 촬영 >
< 싱가포르 회사에서 진행되는 사자춤 이벤트 - 출처: 통신원 촬영 >
특히 싱가포르의 사자춤은 단순한 공연을 넘어 상징적 의례의 의미를 지닌다. 사자가 높은 장대에 매달린 양상추와 귤을 따 먹는 ‘차이칭(Cai Qing)’ 의식은 ‘재물을 거둔다’는 뜻을 담고 있어, 현지 상공인들에게는 한 해의 번영을 기원하는 중요한 연례행사로 자리 잡았다. 공연을 지켜보는 관객들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전통 의식에 참여한다. 사자가 뱉어낸 귤껍질의 모양을 통해 새해 운세를 점치기도 하고, 어린이들은 사자 탈의 코를 만지며 무병장수를 기원한다. 이러한 풍경은 첨단 도시 국가인 싱가포르에서도 전통적 가치와 민속 신앙이 여전히 일상 속 깊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평가된다.
싱가포르 설 문화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관습은 ‘만다린 오렌지(귤)’ 교환이다. 친척이나 지인의 집을 방문할 때 귤 두 개를 빨간 종이 가방에 담아 가져가는 것이 관례처럼 이어지고 있다. 귤을 의미하는 광둥어 ‘감(Gim)’이 ‘금(Gold)’과 발음이 유사해 상대방에게 부와 행운을 전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이 문화의 특징은 ‘교환’이라는 행위 자체에 있다. 방문객이 귤 두 개를 건네면 집주인은 떠나는 손님에게 새로운 귤 두 개를 다시 건네며 답례한다. 이는 받은 복을 다시 나누고 함께 번영하자는 공동체적 가치를 반영하는 전통으로 해석된다. 설 시즌이 되면 대형 유통업체인 페어프라이스(FairPrice)와 콜드 스토리지(Cold Storage) 매장에는 수만 박스의 귤이 대량으로 진열된다. 이는 싱가포르 사회에서 귤이 단순한 과일을 넘어 새해 인사와 마음을 전하는 상징적 매개체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사자춤 이벤트 끝나고 받은 오렌지 두 개 - 출처: 통신원 촬영 >
최근에는 전통적인 귤 교환 문화와 함께 명절 선물의 구성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한국산 제품이 설 시즌 대표 선물로 부상하며 현지 소비 트렌드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과거에는 귤이나 전통 한과류가 명절 선물의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한국산 딸기와 샤인머스캣 등 프리미엄 과일 세트가 빠르게 인기를 얻고 있다. ‘한국산’ 표시가 붙은 과일은 싱가포르 소비자들 사이에서 고급스럽고 품질이 신뢰할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해, 중요한 지인을 방문할 때 귤과 함께 준비하는 대표적인 선물로 자리 잡고 있다.
과일류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산 홍삼 제품과 건강기능식품, 세련된 패키지 디자인을 앞세운 K-뷰티 세트 역시 명절 선물 수요가 증가하는 품목으로 꼽힌다. 싱가포르 주요 쇼핑몰의 설 선물 코너(Hampers)를 살펴보면 전통 보양식품 사이에 한국 브랜드 건강 보조제가 함께 진열된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 같은 변화는 한국 제품이 단순한 소비재를 넘어 ‘건강과 행운을 기원하는 격식 있는 선물’로 인식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된다. 현지 소비자들 사이에서 한국산 제품이 신뢰성과 프리미엄 이미지를 동시에 확보하며 명절 문화 속 새로운 선택지로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 싱가포르에서 판매하고 있는 한국 제품 선물 세트 - 출처: '세포라' 홈페이지 >

< 싱가포르에서 판매하고 있는 한국 제품 선물 세트 - 출처: '고려마트' 홈페이지 >
과거 싱가포르의 설날이 화교 사회 중심의 전통 명절 행사 성격이 강했다면, 최근에는 다민족 국가라는 특성을 반영해 인종과 종교를 초월한 범국가적 축제로 확장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명절 분위기 역시 특정 공동체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대형 쇼핑몰들은 단순한 상업 공간을 넘어 설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문화 플랫폼으로 변모했다. 방문객들은 장식과 공연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새해의 복을 기원하며 명절 문화를 직접 경험하고 있다. 특히 설 기간 동안 쇼핑몰은 일종의 ‘대형 점술관’ 같은 모습으로 바뀐다. 부킷티마(Bukit Timah) 지역 쇼핑몰 중앙에는 띠별 운세를 상세히 소개한 대형 전시판이 설치돼 방문객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2026년 말의 해를 맞아 말띠 운세는 물론 쥐띠부터 돼지띠까지 12간지 각각의 건강운, 재물운, 직업운, 애정운을 사주풀이 형식으로 소개하며 관람객 참여를 유도한다. 이러한 전시는 전통 점술 문화를 현대적 쇼핑 공간 안으로 끌어들여 명절 체험 요소로 재해석한 사례로 평가된다.
< 쇼핑몰 중앙에 전시된 띠 운세 설명판 - 출처: 통신원 촬영 >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운세 전시가 젊은 세대 사이에서도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는 점이다. MZ세대 방문객들은 전시판 앞에서 자신의 띠 운세를 촬영해 소셜미디어에 공유하고, 운세에서 제시된 ‘행운의 색상’에 맞춰 설빔이나 액세서리를 구매하는 등 새로운 소비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전통적 토속 신앙이 현대적인 쇼핑 문화와 결합하며 하나의 ‘명절 콘텐츠’로 재해석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쇼핑몰 운영 측 역시 이를 마케팅 전략으로 적극 활용해 운세 전시 주변에 행운을 상징하는 상품 팝업스토어를 배치하는 등 체험형 소비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싱가포르 설 문화의 절정은 식탁에서 완성된다. 가족과 친지가 함께 모여 회 샐러드 요리인 유생(Yu Sheng)을 젓가락으로 높이 들어 올리며 섞는 ‘로헤이(Lo Hei)’ 의식은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명절 전통이다. 재료를 높이 들어 올릴수록 더 큰 행운이 찾아온다고 믿기 때문에 식당마다 덕담을 외치며 음식을 높이 들어 올리는 활기찬 풍경이 연출된다.
이처럼 싱가포르의 설 풍경은 과거의 전통에 머무르지 않고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라이언 댄스의 역동성, 귤 교환에 담긴 공동체적 의미,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한국산 명절 선물의 인기는 급변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도 전통적 가치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문화 흐름을 유연하게 수용하는 싱가포르 사회의 특징을 보여준다. 화려한 장식 이면에는 서로의 행운을 기원하는 공동체적 정서가 자리한다. 싱가포르의 설날은 단순한 공휴일을 넘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번영’과 ‘행운’이라는 공통된 가치 아래 하나로 연결되는 축제의 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2026년 붉은 말의 해를 맞은 도시는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있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싱가포르 세포라 홈페이지, https://www.sephora.com/shop/gifts
- 싱가포르 고려마트 홈페이지, https://www.koryomart.co.kr/products/lunar-new-year-korean-gift-sele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