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6년 3월 3일, 이재명 대통령이 필리핀을 국빈 방문했다. 이번 방문은 한국과 필리핀 수교 77주년을 맞아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단순한 외교 일정을 넘어 양국 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역사적 전환점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 필리핀은 한국에 특별한 의미를 지닌 우방국이다. 6·25 전쟁 당시 아시아 국가 가운데 가장 먼저, 그리고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견해 한국의 자유 수호에 동참한 혈맹이기 때문이다. 또한 아세안(ASEAN) 국가 중 1949년 한국과 가장 먼저 수교를 맺은 국가로, 양국 관계의 상징적 출발점으로도 평가된다.
이 대통령 내외는 마닐라 빌라모어 공군기지에 도착해 의장대 사열과 예포 발사 속에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현지 유력 일간지 《필리핀 스타(The Philippine Star)》와 방송사 《지엠에이 네트워크(GMA Network)》 등 주요 언론은 이번 방문을 비중 있게 보도하며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현지 언론은 한국의 첨단 기술력과 필리핀의 풍부한 천연자원 및 젊은 인적 자원이 결합할 경우 새로운 협력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감을 전했다.
방문 첫날 오후 이재명 대통령은 말라카냥 대통령궁에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양국 정상은 이번 회담의 핵심 성과로 양국 관계를 최고 단계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Strategic Partnership)’로 격상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안보, 경제, 에너지,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방위적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역내 평화와 번영을 위해 긴밀히 공조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결정으로 평가된다.
구체적인 협력 방안도 함께 도출됐다. 양국 정상은 조선, 원자력 발전, 인공지능(AI) 등 미래 신산업 분야 협력 확대에 뜻을 모았으며, 특정 방산물자 조달을 위한 시행약정 개정을 포함해 총 10건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후 열린 공동언론발표에서 “양국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토대로 통상·인프라·방산 등 전통적 협력 분야를 공고히 하는 동시에 조선·원전·AI 등 신성장 분야까지 협력의 지평을 넓히기로 했다”고 밝히며 향후 경제 협력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 필리핀 동포 간담회에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 - 출처: 통신원 촬영 >
방문 이튿날인 4일, 이재명 대통령은 마지막 일정으로 더마닐라 호텔에서 열린 필리핀 동포 간담회에 참석했다. 행사에는 필리핀 전역에서 모인 한인회 등 동포단체 관계자와 경제인 등 약 200명의 동포 사회 구성원이 참석해 대통령 내외를 환영했다.
이 대통령은 격려사를 통해 수교 기념일인 3월 3일에 맞춰 필리핀을 방문하게 된 인연을 강조하며 단결된 동포사회에 감사를 표했다. 특히 “재외국민 보호는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라고 강조하며, 마르코스 대통령에게 한국 교민들의 안전을 위한 각별한 협조를 요청했다고 밝혀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이 대통령은 구체적인 치안 현안도 직접 언급했다. 한국인 3명을 살해하고 필리핀 교도소에 수감된 상태에서 텔레그램을 통해 한국으로 마약을 유통해 온 중범죄자를 지목하며, 정상회담에서 해당 범죄자에 대한 ‘범죄자 임시인도’를 강력히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마르코스 대통령으로부터 조속한 검토와 시행을 약속받았다”며 “반드시 한국에서 엄중한 수사와 처벌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이 대통령은 2016년 필리핀 경찰에 의해 희생된 고(故) 지익주 씨 사건을 언급하며 교민 사회의 오랜 아픔을 되짚었다. 지익주 씨 사건은 당시 현직 경찰들이 한국인을 자택에서 납치한 뒤 경찰서에서 살해하고 시신을 화장해 유기한 반인륜적 범죄로, 범인들이 살해 이후에도 몸값을 요구해 큰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사건이다. 이 대통령은 주범 중 한 명이 여전히 도주 중인 상황을 지적하며 마르코스 대통령에게 조속한 검거를 요청했고, 이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 2019년 10월 18일 필리핀 국립경찰청에서 열린 고(故) 지익주 씨 추모 행사 - 출처: 통신원 촬영 >
2019년 10월 필리핀 국립경찰청 본청에서 열린 고(故) 지익주 씨 추모 행사는 지금도 현지 교민들에게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당시 통신원을 비롯한 한인들은 범죄가 발생했던 경찰청 주차장에 모여 같은 비극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눈물로 기원했다. 그러나 사건 발생 이후 1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유가족의 고통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고인의 부인 최경진 씨는 “도주한 범인이 아직까지 검거되지 않고 있다”고 호소하며, 대사관 내에 교민들의 법적 지원을 전담할 수 있는 부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낯선 타국에서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이기 쉬운 교민들에게 실질적인 제도적 지원은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라는 점도 강조됐다. 최 씨의 건의처럼 대사관 또는 현지 변호사를 통해 안정적으로 법적 조력을 받을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되기를 바란다는 목소리가 교민 사회 전반에서 나오고 있다.
한편 이번 국빈 방문을 계기로 필리핀 내 한국 문화의 높은 위상도 다시 한번 확인됐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한국 요리가 필리핀에서 가장 사랑받는 메뉴 중 하나가 됐다”고 언급하며 현지에서 확산된 한국 문화의 인기를 직접 평가했다. 필리핀 현지에서 활동하는 통신원의 시각에서 볼 때, 현재 한국 대중문화는 단순히 드라마와 케이팝을 소비하는 ‘보는 한류’를 넘어 ‘생활 속 한류’ 단계로 진화한 모습이다. 졸리비(Jollibee)와 같은 필리핀 대형 기업이 한국 외식 프랜차이즈를 인수하고, 현지 편의점 매대마다 한국식 컵밥과 김밥이 빠르게 판매되는 현상은 한류가 이미 필리핀 국민의 일상 속에 깊이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교민은 “대통령 방문을 계기로 한국인의 위상이 높아진 것 같아 뿌듯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다만 이러한 외교적 성과가 일시적인 환호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내실 있는 후속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체결된 다수의 양해각서(MOU)가 실제 사업으로 구체화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교민들이 건의한 안전 대책과 법률 지원 강화 역시 속도감 있게 추진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실질적인 정책 성과가 현지 교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변화를 가져올 때 이번 국빈 방문의 의미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평가다.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성장 잠재력이 높은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최첨단 기술과 문화 경쟁력을 갖춘 한국과 풍부한 인적 자원 및 시장 잠재력을 지닌 필리핀이 협력을 강화할 경우, 양국은 상호보완적인 ‘전략적 동반자’로서 새로운 발전 모델을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2026년 3월 마닐라에서 확인된 양국의 우정은 수교 77년의 역사를 넘어 미래 협력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고 있다. 정부 간 협력을 넘어 민간 교류로까지 협력의 범위가 확대될 경우, 양국은 변화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도 서로에게 든든한 협력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필스타(Philstar)》 (2026. 3. 1). Welcoming the state visit of President Lee Jae Myung,
https://www.philstar.com/opinion/2026/03/01/2511158/welcoming-state-visit-president-lee-jae-myung
- 《지엠에이 네트워크(GMA Network)》(2026. 3. 3). South Korean President Lee Jae Myung arrives in PH,
https://www.gmanetwork.com/news/topstories/nation/978560/south-korean-president-lee-jae-myung-arrives-in-ph/story/
- 《필리핀 뉴스 에이전시(Philippine News Agency)》 (2026. 3. 3). Marcos meets South Korean President Lee in Malacañang,
https://www.pna.gov.ph/articles/1270225
- 《필리핀 데일리 인콰이어러(Philippine Daily Inquirer)》 (2026. 3. 5). Lee asks Marcos for temporary transfer of jailed Korean drug kingpin,
https://globalnation.inquirer.net/312441/lee-asks-marcos-for-temporary-transfer-of-jailed-korean-drug-kingp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