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봄이 시작되는 시기를 보통 3월로 인식하는 것과 달리, 일본에서는 매년 2월이 봄의 시작을 의미한다. 봄을 알리는 일본의 전통 풍습인 ‘세츠분(節分)’이 가까워지면 일본의 거리 곳곳은 이를 준비하는 분위기로 분주해진다. 세츠분은 새로운 해의 시작을 기념하며 콩을 뿌려 악령을 쫓고 행운을 불러온다는 의미를 지닌 풍습이다. ‘계절을 나눈다’라는 뜻을 가진 세츠분은 본래 사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특히 겨울의 끝과 봄의 시작을 알리는 2월의 세츠분이 대표적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오는 시기를 새해의 시작에 비유해 입춘 무렵에 기념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세츠분의 날짜는 해마다 조금씩 달라지지만 대부분 2월 3일 전후이며, 2026년 세츠분은 2월 3일에 진행됐다.
세츠분 당일이 되면 많은 일본 가정에서는 집 안과 현관에서 콩을 뿌리며 “오니와 소토, 후쿠와 우치!(鬼は外、福は内)”라고 외친다. 이는 악령을 도깨비에 빗대어 “도깨비는 밖으로, 복은 안으로”라는 뜻을 담고 있다. 집 안에 뿌린 콩은 복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지며, 가족 구성원들은 자신의 나이만큼 콩을 주워 먹는 풍습도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콩은 악령이나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의미를 지녀 세츠분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로 꼽힌다.
일본의 문화연구블로그(日本文化研究ブログ)에 따르면 일본의 ‘콩 뿌리기 풍습’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약 706년경 중국에서는 계절의 전환점마다 나쁜 기운이 찾아온다고 믿었으며, 이를 쫓아내어 병과 재앙이 없는 상태인 ‘무병식재(無病息災)’를 기원하는 풍습이 존재했다. 자연재해가 빈번한 일본에서는 이러한 자연신앙과 관련된 전통 풍습이 오랜 시간 자리 잡아 왔다. 세츠분은 단순히 병과 재앙이 없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넘어 현대 일본인들에게 심리적 위안을 제공하는 행사로도 이어지고 있다. 콩을 뿌리는 행위를 통해 사람들은 마음속 불안과 걱정을 덜어내고, 연초의 어려움을 뒤로한 채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를 갖게 된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 시마네현의 대형마트 트라이얼(トライアル)에 진열된 세츠분 상품들 - 출처: 통신원 촬영 >
세츠분 시즌이 다가오는 1월 말부터 일본 전역의 마을 상점과 대형 마트에서는 다양한 세츠분 관련 상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매장에는 악령을 상징하는 도깨비 가면과 도깨비 일러스트가 그려진 여러 색상의 콩 제품, 도깨비 방망이에 비유되는 기다란 김밥 ‘에호마키(えほうまき)’ 등이 진열되며 소비자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세츠분을 앞둔 상점가에는 관련 상품을 구매하려는 사람들로 붐비는 모습도 이어진다. 콩 상품의 가격은 세금을 제외하고 평균 약 160엔(약 1,507원) 수준이며, 어린이용 도깨비 가면이 함께 포함된 과자 상품은 약 318엔(약 2,998원)에 판매되고 있다.
특히 일본식 김밥인 에호마키는 세츠분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에호마키에는 총 7가지 재료가 들어가는데, 각각이 행운의 신을 상징한다고 여겨진다. 세츠분 당일에는 그해 복을 가져다준다고 믿는 신 ‘토시토쿠신(歳徳神)’이 있는 방향을 향해 소원을 빌며 말을 하지 않은 채 김밥을 통째로 먹는 풍습이 이어지고 있다.
에호마키의 기원은 에도시대(1603~1868년) 오사카의 하나마치 지역에서 상업 번창을 기원하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1998년 한 대형 편의점 업체가 ‘마루카부리즈시 에호마키(丸かぶり寿司恵方巻, 통째로 먹는 에호마키)’라는 이름으로 상품화해 판매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된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에는 전통 음식뿐 아니라 긴 형태의 롤케이크나 와플 등 다양한 디저트 제품도 세츠분 시즌 상품으로 등장하며 새로운 소비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 복을 가져다주는 에호마키의 판매현황과 토시토쿠신 - 출처: (좌, 중간)통신원 촬영, (우)'일본문화연구' 블로그 >
지역별 신사에서도 세츠분을 맞아 대규모 콩 뿌리기 행사가 진행된다. 신사를 찾은 방문객들은 새해의 행운과 안녕을 기원하며 콩을 뿌리고 전통 의식에 참여한다. 일본 주요 미디어 역시 각 지역 신사의 행사 현장을 보도하며 세츠분의 분위기를 전국에 전하고 있다. 세츠분 다음 날인 2월 4일, 일본 ≪NHK 돗토리 뉴스(鳥取ニュース)≫는 돗토리현에 위치한 한 신사에서 학생들이 콩을 뿌리며 새해의 복을 기원하는 모습을 현장 영상과 함께 소개했다. 보도 영상에는 해맑은 표정으로 콩을 뿌리는 어린이들의 모습과 함께 “올 한 해의 복을! 신사에서 콩 뿌리기”라는 안내 문구가 담겨 행사 분위기를 전했다. 지역 주민과 학생들이 함께 참여하는 모습은 세츠분이 단순한 전통 의례를 넘어 공동체가 한 해의 안녕을 함께 기원하는 행사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세츠분은 한 해의 좋은 기운을 불러오기를 바라는 의미 속에서 남녀노소가 함께 참여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계절 행사로 자리 잡고 있다.

< 돗토리현에 위치한 신사의 대규모 콩뿌리기 현장 - 출처: 통신원 촬영 >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일본문화연구 블로그, https://jpnculture.net/setsub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