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1일, 뉴욕의 봄기운이 막 오르던 날, 특별한 작가와의 만남이 열렸다. 주인공은 독보적인 상상력과 따뜻한 시선으로 한국 문단에서 '믿고 보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정세랑. 이번 작가와의 만남은 그녀의 단편집 『옥상에서 만나요(See You on the Rooftop)』와 『효진(Hyojin)』의 영어 번역 출간을 기념해 현지 독자들과 직접 만나는 자리였다. 특히 이 행사는 단순한 작품 소개를 넘어, 한국 내 젊은 작가들의 미국 진출이 갖는 의미와 한국 문학이 세계 시장에서 어떻게 공명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으로 기능했다.


< 뉴욕에서 열린 정세랑 작가 작가와의 만남 쇼에 행사 진행하는 유상근 교수와 정세랑 작가
- 출처: 뉴욕한국문화원(상), 통신원 촬영(하) >
이번 작가와의 만남은 뉴욕한국문화원이 주최하고, 프린스턴 대학(Princeton University)과 펜실베니아 대학(University of Pennsylvania)의 한국어 프로그램이 공동으로 참여해 마련된 자리다. 행사는 뉴욕의 마리스트 대학(Marist University)에서 영어 및 글로벌 스터디(global study)를 가르치는 유상근 교수가 진행을 맡아 안정감 있게 이끌었으며, 작품의 맥락과 주제를 짚어내는 밀도 있는 질문들로 작가와 관객 사이의 대화를 자연스럽게 확장시켰다. 특히 이번 행사를 계기로 단편집 『옥상에서 만나요』에 수록된 『옥상에서 만나요(See You on the Rooftop)』와 『효진(Hyojin)』의 영어 번역본이 공동 출간되어 현장에서 배포됐으며, 작가와의 만남의 의미를 일회성 행사를 넘어 실제 독서 경험으로까지 이어지게 했다.

< 뉴욕에서 열린 정세랑 작가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 참여한 독자들
- 출처: 뉴욕한국문화원 >

< 영문 번역본으로 출간된 정세랑 작가의 단편집, '옥상에서 만나요'
- 출처: 뉴욕한국문화원 >
행사는 개최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온라인 예약이 열린 지 단 4시간 만에 전 좌석이 매진되며 정세랑 작가의 현지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행사 당일, 강연장은 작가를 만나기 위해 모인 독자들로 가득 찼고, 구성층은 케이팝과 한국 드라마를 통해 한국 문화를 접한 뒤 이후 관심을 문학으로 확장한 20~30대가 주를 이뤘다. 다양한 인종과 배경의 독자들이 한 공간에 모여 작가의 말에 집중하고, 예리한 질문을 이어가는 모습은 한국 문학이 더 이상 낯선 외부의 이야기가 아님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 뉴욕에서 열린 정세랑 작가 작가와의 만남 쇼에 참여한 독자들 - 출처: 뉴욕한국문화원 >
이번 작가와의 만남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대목은 작품 선정과 번역 방식에 대한 작가의 분명한 태도였다. 수많은 작품 가운데 「옥상에서 만나요」와 「효진」을 선택한 이유를 묻자, 정세랑 작가는 "다른 문화권의 문학을 읽는 독자들은 가장 능동적인 독자일 것"이라며, "한국적인 삶의 단면이 응축된 작품을 고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을 그대로 전하고 싶었다는 말이다.
실제로 「옥상에서 만나요」에는 『규중조녀비서』나 옥상에서 주술을 외우는 장면처럼, 한국적인 맥락을 알 때 비로소 입체적으로 읽히는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 번역본 또한 'eonni(언니)', 'ajussi(아저씨)', 'bulhyo(불효)'와 같은 고유어를 그대로 유지하고 각주를 덧붙이는 방식을 택했다. 이에 대해 작가는 "언어 구조의 차이로 의미의 변형은 불가피하지만, 각주는 의미를 덜어내기보다 오히려 더 쌓아 올린다"고 말하며, 현지화보다 '한국어의 결'을 드러내는 번역을 지지했다. 이는 한국 문학의 고유성을 유지한 채 세계 곳곳의 독자와 소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자, 낯섦을 통해 독자의 인식 지평을 확장하려는 태도로 읽힌다.

< 독자들과 질의 응답 시간을 갖는 정세랑 작가 - 출처: 뉴욕한국문화원 >
대화는 자연스럽게 단편집 전반으로 확장됐다. 정세랑의 작품은 한 인물의 내면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보는 섬세함과 동시에, 그 인물이 놓인 사회적인 구조와 관계망을 함께 포착한다는 점에서 공감을 얻었다. 「웨딩드레스 44」는 하나의 드레스를 공유하는 마흔 명의 여성을 통해 결혼 제도를 둘러싼 성차별을 구조적인 문제로 드러내고, 「보늬」는 돌연사를 둘러싼 관계망을 통해 노동 환경과 인권 의식의 부재를 비춘다. 「옥상에서 만나요」 역시 다양한 사연을 지닌 인물들을 통해 절망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분포한 감정임을 포착한다.
이에 대해 작가는 "어떤 일이 반복되고, 그 반복 속에서 괴로움을 느낄 때 이야기를 쓰게 된다"고 말하며, 삼풍백화점 붕괴와 성수대교 사고와 같은 재난의 기억을 언급했다. 그는 "지금 살아 있는 것조차 운의 결과일 수 있다"는 인식 아래, 안전망의 부재와 구조적인 불안을 지속적으로 탐색해 왔다고 덧붙였다. 동시에 "반복과 그 반복의 균열"이 자신의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라고 강조했다.

< 정세랑 작가에게 질문하는 영어 문화권의 독자 - 출처: 뉴욕한국문화원 >
이러한 문제의식은 여성 인물들의 연대와 여성주의적 시선으로도 이어진다. '설자은 시리즈'에서 남장을 한 인물이 유일하게 타인의 고통을 감지하고, 여성의 시선으로 사건의 본질을 포착하는 장면, 그리고 「웨딩드레스 44」, 「옥상에서 만나요」, 「효진」 등에서 여성들이 서로를 지지하고 위로하는 순간들은 정세랑 작가의 작품 세계에서 중요한 축을 이룬다. 특히 일부 작품에서는 화자의 성별을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설정한 뒤, 독자의 인식을 되묻는 방식을 마련했는데, 이는 젠더 감수성을 환기시키는 중요한 장치다.
이러한 흐름과 맞물려 한국 사회의 페미니즘과 여성 서사의 확장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자, 작가는 "한국에 국한되지 않고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고 답했다. 작가는 1990년대 이후 여성들이 동등한 교육을 받기 시작하며 문학계에 새로운 목소리가 등장했고, 이 흐름은 이제 국경을 넘어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해외 문학 행사에서 한국 문학의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았다는 동료 작가들을 여러 차례 만났다고 밝히며, "이제 시작이고, 꺾이지 않을 현상"이라고 단언했다.

< 자신의 영문 번역 단편집에 서명하는 정세랑 작가 - 출처: 뉴욕한국문화원 >
작가와의 만남의 마지막, 정세랑은 짧지만 오래 남을 말을 남겼다. "저의 문학적 기원을 떠올리면, 한국 문학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권의 작품들이 저를 만들었습니다. 전 세계 문학의 수혜를 받아 한국 문학을 쓰고 있는 셈이죠." 이어 "문학은 원래 국경을 넘어 흐르지만, 그 흐름이 더 활발해지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뉴욕이라는 무대에서 울려 퍼진 이 말은, 한국 문학이 이제 한 지역의 이야기를 넘어 세계와 연결된 언어로 확장되고 있음을 조용히 증명하고 있었다.

< 뉴욕에서 열린 정세랑 작가 작가와의 만남 쇼에 참여한 독자들 - 출처: 뉴욕한국문화원 >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뉴욕한국문화원 홈페이지,
https://www.koreanculture.org/education-literature/2026/3/9/serang-chung-in-convers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