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정치가 16년 만에 거대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지난 2010년부터 장기 집권하며 일명 '전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우파 행정부'를 구축했던 빅토르 오르반(Viktor Orbán) 총리와 피데스(Fidesz) 당의 독주 체제가 2026년 4월 총선을 기점으로 막을 내렸다. 마자르 페테르(Magyar Péter)가 이끄는 티사당(Tisza Party)의 승리는 단순히 지도자 교체를 넘어, 지난 10여 년간 헝가리 사회 전반을 지배해온 국가주의적 통치 구조에 대한 종언을 의미한다.
헝가리의 이번 정권 교체는 유럽 정치사적인 관점에서 민주주의 가치 회복이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오르반 정권은 집권 기간 중 언론과 사법부를 장악하고, 특히 문화와 교육 분야를 '문화혁신부(KIM)'라는 거대 부처 아래 통합해 국가 프로파간다(Propaganda, 특정한 의도나 목적을 가지고 여론을 조작하여 대중의 판단과 행동을 일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선전, 선동 행위)의 수단으로 활용해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 과정에서 대학들은 정부 산하 재단에 종속됐고, 유럽연합(EU)은 헝가리의 민주적 자율성 훼손을 이유로 교환 학생 프로그램인 '에라스무스+(Erasmus+)' 지원을 중단하기도 했다.
오는 5월 10일 신정부의 공식 수립을 앞두고, 헝가리 현지 학계와 문화계는 정책적인 대전환을 준비 중이다. 이에 통신원은 헝가리 지성계를 대표하는 안드라쉬 뮐러(András Müller) 외트뵈시 로란드 대학교(ELTE, 이하 엘테 대학교)의 철학 박사 대학원 학과장 교수를 만나, 신정부가 그려갈 문화·교육 정책의 청사진과 한-헝가리 문화 교류의 미래에 대해 심도 있는 대담을 나누었다.

< 부다페스트 현지에서 헝가리 신정부의 문화 정책 변화와 학문적 자율성 회복에 대해 제언 중인
안드라쉬 뮐러(András Müller) 엘테 대학교의 교수 - 출처: 인터뷰 당사자인 안드라쉬 뮐러(András Müller) 제공>
Q1. 헝가리 현대사에서 이번 정권 교체가 갖는 무게감이 상당하다. 학계가 체감하는 현지의 분위기는 어떠한가?
A1. 한 세대에 가까운 16년이라는 시간은 특정 정당의 정책이 국가의 골격이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동안 헝가리는 '비자유 민주주의'의 실험장과 같았다. 특히 교육과 문화를 행정적인 통제 아래 두었던 거대 부처 체제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지워버렸다. 이번 총선 결과는 헝가리 시민들이 다시 '자율성'과 '전문성'의 가치를 선택했음을 보여준다. 현재 대학과 문화 현장에서는 지난 10여 년간 정지됐던 민주적인 토론의 장이 다시 열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Q2. 오르반 정권은 2010년 집권 초기부터 기존의 독립된 부처들을 해체하고 '인적자원부(EMMI)'나 '문화혁신부(KIM)'와 같은 거대 부처로 통합해 운영하며 전문성을 약화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번에 부활하는 부처인 '교육부'와 '문화부(Művelődési Minisztérium)'의 독립이 갖는 실질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A2. 과거 오르반 정부가 교육부를 내무부 산하에 두었던 것은 교육을 '백년대계(百年大計, 백 년 앞을 내다보고 세우는 원대한 계획)'가 아닌 '치안과 통제'의 관점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문화 정책을 통합 부처 내의 한 분과로 격하시키며 예술을 정권 홍보의 도구로 전락시켰다. 신정부가 과거 존재했던 독립 부처들을 복원하는 것은 각 분야의 전문 행정 체계를 정상화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다. 이제 문화부는 예술가들의 창작 자율성을 보장하고, 교육부는 정치적인 지침(guideline)이 아닌 학문적인 원칙에 따라 운영될 것이다. 이는 헝가리 행정 시스템이 유럽 표준으로 회귀하는 첫걸음이다.
Q3. 헝가리 영화 산업은 그간 국가주의적 색채가 강한 대작 위주로 지원이 쏠렸다는 지적이 있었다. 영화 기금 운용의 방향성 전환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A3. 그렇다. 기존 헝가리의 국가영화기구(NFI)는 정권의 서사를 대변하는 영화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다. 반면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한 독립 영화나 예술 영화들은 철저히 배제됐다. 신정부는 국가영화기구(NFI)의 구조를 전면 개편하고, 차기 정부 출범에 앞서 이미 기존의 비합리적인 재정 의무 이행을 중단시켰다. 앞으로는 <모든 것에 대한 설명(Magyarázat mindenre)>이나 <검은 점(Fekete pont)>과 같은 독립 영화들이 국제 영화제에서 거둔 성과가 정책적인 보상으로 이어지는 공정한 생태계가 조성될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관제 영화의 시대가 저물고, 일명 '헝가리 시네마'의 르네상스(Renaissance, 문예 부흥이나 학예 부흥을 의미)가 다시 올 것으로 확신한다.
Q4. 오르반 정부는 2019년부터 이른바 '대학 모델 전환'을 통해 국립 대학들을 정부 인사가 장악한 '공익 자산 관리 재단'에 귀속시키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헝가리 교육계가 잃어버린 가치는 무엇이며, 중단됐던 '에라스무스+(Erasmus+)'가 유럽 대학 사회에서 갖는 위상은 어느 정도인가?
A4. 재단화의 본질은 국가 자산인 대학을 정권 측근들이 관리하는 사적 재단에 넘겨 학문의 자유를 물리적으로 거세한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대학은 비판적인 지성을 잃고 정권의 취업 훈련소로 전락했다. 특히 유럽연합(EU)의 핵심 정책인 '에라스무스+(Erasmus+)'는 단순한 유학 지원을 넘어 유럽 대학 간의 학점 교류, 공동 연구, 문화적인 연대를 상징하는 일명 '유럽 시민권'의 통로다. 그러나 엘테 대학교를 제외하고 헝가리 내 대부분의 대학들은 이 혜택을 받지 못했다.
유럽연합(EU)은 대학을 국가의 사적 재단 아래 두는 오르반의 정책을 비민주적인 것으로 판단하고, 헝가리 내 '공익 자산 관리 재단'에 속한 모든 대학에 '에라스무스+(Erasmus+)' 정책 지원을 중단했다. 이것이 중단되었다는 것은 헝가리 청년들이 유럽 공동체에서 고립됐음을 뜻한다. 우리 엘테 대학교가 이 체제에 끝까지 저항해 '에라스무스+(Erasmus+)' 지원을 유지한 것은 헝가리 지성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킨 일이었다. 신정부는 이 사슬을 끊고 헝가리 내 모든 대학을 다시 유럽의 품으로 돌려보낼 것으로 기대한다.
Q5. 학술계에서는 오르반 정부가 2019년 '헝가리 과학아카데미(MTA)'로부터 강제로 분리해낸 연구 네트워크(HUN-REN)의 재통합을 요구하고 있다. 200년 역사의 헝가리 과학아카데미(MTA)와 분리된 연구 네트워크(network) 사이에는 어떤 갈등이 있었나?
A5. '헝가리 과학아카데미(MTA)'는 헝가리에서 가장 존경받는 지적 권위의 상징이자 기초 과학 연구의 산실이다. 2019년 오르반 정부는 연구 예산을 직접 통제하기 위해 헝가리 과학아카데미(MTA) 산하의 우수한 연구소들을 강제로 떼어내 정부 직속의 연구 네트워크(당시 ELKH, 현 HUN-REN)를 신설했다. 이는 과학의 정치적인 종속을 초래했고, 많은 연구자가 연구의 독립성을 찾아 해외로 떠나는 '두뇌 유출' 사태를 낳았다. 신정부가 추진하는 재통합은 국가 과학 기술 역량을 정치로부터 독립된 헝가리 과학아카데미(MTA)의 전문적인 관리 체계로 복원하는 일이다. 이는 헝가리의 학술적인 신뢰도를 국제적인 수준으로 회복하는 필수 과제다.
Q6. 한국의 독자들은 이번 변화가 한국 문화, 특히 한국 드라마나 음악 등의 현지 확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해한다. 향후 양국 문화 교류의 발전 방향에 대해 제언한다면?
A6. 헝가리에서 한국 문화의 인기는 이미 단순한 유행을 넘어섰다. 하지만 그간의 교류가 단발성 행사에 치중된 면이 있었다. 신정부의 정책 기조인 '자율'과 '연대'는 한-헝 교류를 더욱 깊게 만들 것이다. 이제는 한국의 독립 영화와 헝가리의 예술 영화가 공동 제작을 논의하고, '에라스무스+(Erasmus+)' 제도가 정상화된 대학들이 한국 대학들과 실질적인 학생 교류를 확대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정부가 판을 깔아주는 방식이 아니라, 민간 예술가와 학자들이 자유롭게 만나는 '풀뿌리 문화 교류'가 신정부 하에서 더욱 강력하게 전개되기를 기대한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인터뷰 당사자 안드라쉬 뮐너(András Müller)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