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는 문화예술을 시민의 일상과 관광산업, 도시 브랜드를 연결하는 핵심 자산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시민들이 지역 예술과 문화유산을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에스지 컬처 패스(SG Culture Pass)를 도입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적인 케이팝 아티스트 방탄소년단(BTS)의 대규모 공연을 장기간 유치하며 글로벌 팬덤 관광 수요를 겨냥하고 있다. 이는 문화예술을 단순한 여가 활동이 아니라, 사회적 참여와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적 자산으로 활용하는 싱가포르의 정책 방향을 보여준다.
에스지 컬처 패스는 싱가포르 문화공동체청(Ministry of Culture, Community and Youth, 이하 MCCY)이 추진하는 문화 지원 정책이다. 2025년 9월 1일부터 18세 이상 싱가포르 시민은 100 싱가포르 달러(약 11만 8천 원) 상당의 크레딧을 받을 수 있다. 이 크레딧은 공연, 전시, 박물관 프로그램, 문화유산 투어, 창작 워크숍 등 승인된 지역 예술·문화유산 프로그램의 티켓 구매에 사용할 수 있으며 2028년 12월 31일까지 유효하다. 시민 개인의 문화비 부담을 낮추는 동시에 지역 예술단체와 문화기획자의 관객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마련된 정책이다.

< 에스지 컬처 패스(SG Culture Pass) 공식 웹사이트 화면 - 출처: 에스지 컬처 패스(SG Culture Pass) 웹사이트>
< 에스지 컬처 패스(SG Culture Pass) 공식 웹사이트 화면 - 출처: 에스지 컬처 패스(SG Culture Pass) 웹사이트>
이 정책의 핵심은 단순히 문화 활동 비용을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싱가포르 정부기술청(GovTech)은 에스지 컬처 패스가 기존에 분산돼 있던 문화 프로그램 탐색, 예매, 결제 과정을 하나의 디지털 서비스로 연결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시민은 싱패스(Singpass)로 로그인하고, 고웨어(GoWhere)를 통해 프로그램을 찾고, 고브월렛(GovWallet)을 통해 크레딧을 사용할 수 있다. 즉 문화예술 참여 과정에서 발생하는 행정적·기술적 장벽을 낮춰 시민의 문화 접근성을 높이는 구조다.
문화 프로그램이 존재하더라도 시민들이 이를 찾기 어렵거나 여러 웹사이트와 결제 시스템을 거쳐야 한다면 실제 참여로 이어지기 쉽지 않다. 에스지 컬처 패스는 이러한 불편을 줄이기 위해 마련된 통합 플랫폼이다. 특히 대형 기관뿐 아니라 소규모 문화기획자와 독립 예술단체도 하나의 국가 플랫폼 안에서 시민들에게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는 예술 향유자에게는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창작자에게는 새로운 관객과 만날 기회를 제공한다.
정책 시행 이후 일정 수준의 참여도 확인되고 있다. MCCY에 따르면 2026년 1월 1일 기준 110만 명 이상의 싱가포르인이 에스지 컬처 패스에 등록했으며, 13만 6,000명 이상이 크레딧을 사용했다. 사용된 크레딧 규모는 980만 싱가포르 달러(약 116억 원)를 넘어섰고, 4만 6,000명 이상은 100 싱가포르 달러 크레딧을 모두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크레딧 사용자의 절반가량이 18세부터 35세 사이의 청년층으로 집계됐다. 이는 문화 향유 지원 정책이 젊은 세대의 문화 참여 확대와도 연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에스지 컬처 패스는 싱가포르가 문화예술을 통해 시민의 정체성과 공동체 경험을 강화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싱가포르는 다민족·다언어 사회인 만큼 문화유산과 지역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일이 국가 정체성 형성과도 맞닿아 있다. 문화유산 투어와 박물관 체험, 지역 예술 공연, 싱가포르 문학 관련 프로그램은 시민이 자신이 사는 도시의 역사와 이야기를 다시 발견하도록 돕는다. 문화정책이 단순한 소비 지원을 넘어 시민과 지역 사회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설계되고 있는 셈이다.
동시에 싱가포르는 문화예술을 외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도시 브랜딩 전략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6년 12월 예정된 방탄소년단(BTS)의 싱가포르 공연이다. 싱가포르관광청(Singapore Tourism Board, 이하 STB)은 방탄소년단(BTS)이 2026년 12월 싱가포르에서 총 4회 공연을 개최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STB는 이를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긴 공연 일정이라고 설명하며, 싱가포르가 세계적 수준의 라이브 엔터테인먼트 목적지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소개했다.

< 싱가포르 4회 공연 유치를 발표한 싱가포르관광청 웹사이트 화면 - 출처: 싱가포르관광청 웹사이트>

< 싱가포르 방탄소년단(BTS) 공연 관련 현지 언론 보도 화면 - 출처: 현지 언론 종합 >
STB는 싱가포르가 대규모 다회차 콘서트를 개최할 수 있는 이유로 풍부한 공연 운영 경험과 세계적 수준의 공연장, 우수한 지역 연결성, 교통과 숙박 인프라, 안전한 도시 환경 등을 제시했다. 이는 싱가포르가 단순히 공연을 유치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연 관람 전후의 도시 경험까지 관광 상품으로 연결하려는 전략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공연장을 찾는 팬들은 숙박과 외식, 쇼핑, 도시 관광 등을 함께 소비하게 된다. 이는 하나의 공연이 도시 전체의 관광 수요로 확장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방탄소년단(BTS) 공연 유치는 케이팝의 소프트파워를 싱가포르 관광 전략에 결합한 사례로 볼 수 있다. STB는 2024년부터 하이브(HYBE)와 협력 관계를 이어오고 있으며, 제이홉, 세븐틴(SEVENTEEN), 엔하이픈(ENHYPEN) 등 케이팝 아티스트와 연계한 콘텐츠와 이벤트도 꾸준히 진행해 왔다고 밝혔다. 싱가포르는 케이팝 팬덤이 국경을 넘어 이동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팬들은 특정 공연을 보기 위해 해외로 이동하고, 공연이 열리는 도시는 그 자체로 여행 목적지가 된다. 이 과정에서 케이팝은 단순한 음악 장르를 넘어 관광과 도시 브랜드를 움직이는 문화 자산으로 기능한다.
방탄소년단(BTS) 공연을 둘러싼 관심은 관광산업 차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현지 매체 《마더십(Mothership)》은 한 싱가포르 고용주가 미얀마 출신 가사도우미의 방탄소년단(BTS) 콘서트 관람을 돕기 위해 약 1,200 싱가포르 달러(약 141만 8천 원) 상당의 티켓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한 사연을 보도했다. 해당 가사도우미는 2015년부터 방탄소년단(BTS)의 팬이었지만 경제적 이유로 콘서트를 관람하지 못했고, 이번 싱가포르 공연을 앞두고 고용주에게 급여 선지급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례는 케이팝 공연이 단순한 팬덤 소비를 넘어 개인의 꿈과 문화 경험, 감동의 이야기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싱가포르는 문화정책을 통해 시민과 관광객을 동시에 아우르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안으로는 에스지 컬처 패스(SG Culture Pass)를 통해 시민들이 지역 예술과 문화유산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밖으로는 방탄소년단(BTS)과 같은 글로벌 대중문화 콘텐츠를 활용해 해외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하나는 시민의 문화 향유 기회를 넓히는 정책이고, 다른 하나는 글로벌 팬덤을 활용한 관광 유치 전략이다. 두 정책은 성격은 다르지만 문화예술을 도시 경쟁력의 핵심 자산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맞닿아 있다.
한국 문화와의 관계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의미가 있다. 한국 대중문화는 이미 싱가포르에서 높은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으며, 케이팝 공연은 현지 팬뿐 아니라 주변 아시아 국가 팬들의 이동까지 촉진하는 콘텐츠로 기능하고 있다. 싱가포르가 방탄소년단(BTS) 공연을 장기 일정으로 유치한 것은 한국 대중문화가 아시아 도시의 관광 브랜딩 전략에 활용되는 방식을 보여준다. 한국 입장에서는 케이팝이 단순한 공연 수출을 넘어, 해외 도시의 정책과 관광산업 속에서 전략적으로 배치되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문화투자 전략은 균형 있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스타 공연은 도시의 국제적 인지도를 높이고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효과적이지만, 시민들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지역 문화 생태계와 함께 성장할 때 지속성이 커질 수 있다. 에스지 컬처 패스(SG Culture Pass)가 지역 예술과 문화유산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정책이라면 방탄소년단(BTS) 공연 유치는 싱가포르가 글로벌 문화 흐름을 도시 브랜딩에 연결하는 방식이다. 두 방향이 함께 추진될 때 싱가포르의 문화정책은 시민 참여와 국제 경쟁력을 동시에 강화할 수 있다.
싱가포르는 작은 내수시장의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지리적 연결성과 안정적인 도시 인프라, 다문화 환경을 활용해 문화예술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에스지 컬처 패스(SG Culture Pass)는 시민들이 문화예술을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생활밀착형 정책이며, 방탄소년단(BTS) 공연 유치는 글로벌 팬덤을 도시로 불러들이는 관광 전략이다. 시민의 문화 향유 정책과 케이팝 기반 관광 전략은 서로 다른 영역처럼 보이지만, 두 사례 모두 싱가포르가 문화예술을 미래 경쟁력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 문화산업에도 시사점을 제공한다. 한국 콘텐츠가 해외에서 소비되는 방식은 이제 음원과 영상, 공연 티켓 판매에만 머물지 않는다. 해외 도시들은 한국 대중문화를 관광객 유치와 도시 이미지 제고, 지역 경제 활성화와 연결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사례는 문화가 시민의 일상과 관광산업, 국가 브랜드를 잇는 정책 도구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문화예술에 대한 투자가 사회 내부의 문화 참여를 확대하는 동시에 외부의 관심을 도시로 끌어들이는 전략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 출처 및 참고자료
- 싱가포르 정부 기술청(Government Technology Agency of Singapore) 홈페이지 내 보도자료 (2026.05.12). Rediscovering Singapore’s stories through SG Culture Pass, https://www.tech.gov.sg/technews/rediscovering-singapore-stories-through-sg-culture-pass/
- 싱가포르 문화공동체청(Ministry of Culture, Community and Youth) 홈페이지 내 에스지 컬처 패스(SG Culture Pass) 부분, https://www.mccy.gov.sg/sectors/arts-and-heritage/sg-culture-pass/
- 싱가포르 문화공동체청(Ministry of Culture, Community and Youth) 홈페이지 내 보도자료 (2026.01.07). Transferring of SG Culture Pass credits, https://www.mccy.gov.sg/about-us/news-and-resources/transferring-of-sg-culture-pass-credits/
- 싱가포르 문화공동체청(Ministry of Culture, Community and Youth) 홈페이지 내 보도자료 (2026.01.08). Redemption rates for SG Culture Pass, https://www.mccy.gov.sg/about-us/news-and-resources/redemption-rates-for-sg-culture-pass-/
- 싱가포르관광청(Singapore Tourism Board) 홈페이지 내 보도자료 (2026. 1. 14). Singapore to host 4-night BTS performance in December 2026, the longest run in Asia, outside of Korea and Japan, https://www.stb.gov.sg/about-stb/media-publications/media-centre/singapore-to-host-4-night-bts-performance-in-december-2026--the-longest-run-in-asia--outside-of-korea-and-japan/
- «더 비즈니스 타임스(The Business Times)» (2026.01.20). Singapore bets on K-pop’s soft power for long-term tourism and branding gains, https://www.businesstimes.com.sg/companies-markets/singapore-bets-k-pops-soft-power-long-term-tourism-and-branding-gains
- «더 스트레이츠 타임스(The Straits Times)» (2026.05.26). K-pop stars BTS to bring exclusive Nike x BTS tour merch to S’pore ahead of December concerts, https://www.straitstimes.com/life/entertainment/k-pop-stars-bts-to-bring-exclusive-nike-x-bts-tour-merch-to-spore-ahead-of-december-concerts
- «마더십(Mothership)» (2026.05.26). S’porean woman offers to pay S$1,200 for helper’s BTS concert ticket to fulfil her dream, https://mothership.sg/2026/05/helper-bts-concert-dream-employer-hel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