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도예가 박종진이 싱가포르 내셔널 갤러리에서 개최한 2026 <로에베 재단 공예상>에서 최종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박 작가는 작품 <착시의 층위(Strata of Illusion)>로 올해 수상자에 선정됐다. 이번 수상은 한국 공예가 세계 현대공예 무대에서 기술적 완성도와 재료 실험, 예술적 해석을 동시에 인정받은 사례로 평가받는다.
<로에베 재단 공예상>은 스페인 패션 브랜드 로에베(LOEWE)의 문화재단인 로에베 재단이 2016년 시작한 국제 공예 공모전이다. 이 상은 전통 공예 기술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재료와 형식의 경계를 확장하는 작가를 조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2026년 전시는 싱가포르 내셔널 갤러리에서 5월 13일부터 6월 14일까지 열린다. 올해는 133개국에서 5,100건 이상의 작품이 출품됐고, 이 가운데 최종 후보 30명을 선정했다. 전시에는 도자, 섬유, 유리, 금속, 옻칠, 가구 등 다양한 매체를 기반으로 한 현대공예 작품을 소개했다.

< 싱가포르 내셔널 갤러리에서 개최한 2026 로에베 재단 공예상 전시 안내 화면 - 출처: 싱가포르 내셔널 갤러리 웹사이트 >
박종진 작가의 수상작 <착시의 층위>는 도자 작업의 범위를 확장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작가는 종이에 색을 입힌 도자 슬립을 바르고 이를 여러 겹으로 쌓은 뒤 소성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굽는 과정에서 종이는 타 없어지고, 도자 재료가 남아 직물이나 종이 더미처럼 보이는 형태를 이룬다. 완성된 작품은 부드럽고 접힌 천이나 종이를 떠올리게 하지만, 실제로는 단단한 도자 물성을 지닌다. 이처럼 시각적 인상과 물질의 실제 성질 사이의 간극은 작품의 주요한 특징이다.
심사위원단은 박 작가의 작품이 도자에 대한 일반적 기대를 흔들고, 공예가 조각적 존재감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수상작은 도자라는 재료를 사용하지만, 유리공예, 제본, 직물, 조각의 감각을 함께 떠올리게 한다. 이는 하나의 공예 장르 안에 머무르기보다 여러 제작 방식과 감각을 교차시키는 현대공예의 흐름을 보여준다.
이번 수상은 싱가포르가 세계적 공예와 디자인 담론의 중심 국가로 기능함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로에베 재단 공예상 전시가 동남아시아에서 열린 것은 이번이 최초로, 주최 장소인 싱가포르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Singapore)는 동남아시아 현대미술과 국제 전시를 함께 다루는 문화기관이다. 이곳에서 열린 전시에 한국 작가가 최종 수상자로 선정된 점은 한국 공예가 아시아의 주요 문화 플랫폼 안에서 국제적 관심을 받았다는 의미를 지닌다.

< 박종진 작가의 수상작 ‘착시의 층위(Strata of Illusion)’ 소개 화면 - 출처: 로에베 재단 인스타그램 계정(@loewe) >
한국 문화가 해외에서 소비되는 방식은 그동안 케이팝, 한국 드라마, 영화, 음식 등 대중문화 중심으로 조명됐다. 그러나 이번 수상은 한국 문화의 해외 진출이 공예와 순수예술, 디자인 영역에서도 이뤄짐을 보여준다. 특히 공예는 빠른 소비보다 재료, 시간, 손의 기술, 제작자의 태도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분야다. 박 작가의 작품은 전통적인 도자 기법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종이와 도자 슬립, 소성 과정의 변화를 통해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만들었다. 이는 한국 공예가 전통의 보존에만 머무르지 않고, 동시대적 실험과 국제적 언어를 함께 구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싱가포르 관객에게도 공예를 새롭게 바라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공예는 흔히 실용적 물건이나 장식품으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로에베 재단 공예상>은 공예를 예술적 사유와 재료 실험의 장으로 제시한다. 전시에 소개된 최종 후보 30명의 작품은 각국의 전통과 기술을 바탕으로 하되, 단순한 전통 재현이 아니라 재료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방향을 보여준다. 박종진 작가의 작품 역시 도자의 고정된 이미지를 흔들고, 관객에게 ‘이것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싱가포르는 최근 공연, 전시, 축제, 디자인 행사를 통해 문화도시로서의 위상을 강화한다. 싱가포르 내셔널 갤러리, 아트사이언스 뮤지엄, 에스플러네이드 등 주요 문화 공간은 국제 전시와 공연을 유치한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열린 <로에베 재단 공예상>은 싱가포르가 세계적 예술·디자인 교류의 플랫폼으로 기능함을 보여준다. 동시에 한국 작가의 수상은 한국 공예가 이 플랫폼 안에서 경쟁력 있는 창작 언어를 갖고 있음을 증명한다.
박종진 작가의 수상은 한국 공예의 국제적 평가를 넓히는 계기가 된다. 한국 도자는 오랜 전통을 지닌 분야지만, 현대공예에서는 전통 기술을 어떻게 현재의 감각과 연결할 것인지가 과제로 제기됐 왔다. 해당 작품은 도자의 물성을 유지하면서도 종이와 섬유처럼 보이는 착시를 만들어내며, 전통 재료와 현대적 실험 사이의 균형을 보여준다. 이러한 접근은 한국 공예가 과거의 유산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새로운 조형 분야를 만들어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

< 박종진 작가의 인터뷰 모습 - 출처: 로에베 재단 인스타그램 계정(@loewe) >
이번 수상은 한국 문화의 해외 확장을 바라보는 시야도 넓힌다. 한류의 확산은 대중문화 영역에서 두드러지지만, 문화의 국제적 영향력은 다양한 장르가 함께 움직일 때 풍부해진다. 케이팝과 한국 드라마가 대중적 관심을 견인한다면, 공예와 미술, 공연예술은 한국 문화의 깊이와 다양성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세계적 공예상에서 한국 도예가가 수상한 이번 사례는 한국 문화가 동시대 예술과 디자인 영역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로에베 재단 공예상> 전시는 6월 14일까지 싱가포르 내셔널 갤러리에서 진행된다. 이번 전시는 한국 작가의 수상작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현대공예 흐름을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기회다. 박종진 작가의 작품은 도자라는 익숙한 재료를 낯설게 바라보게 만들며, 공예가 오늘날 어떤 방식으로 예술의 경계를 넓히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이번 수상은 한국 공예가 세계 관객과 만나는 하나의 장면으로 기록된다.
참고자료
싱가포르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Singapore) 공식 홈페이지, https://www.nationalgallery.sg/sg/en/exhibitions/LOEWE-FOUNDATION-Craft-Prize-2026.html
로에베(LOEWE)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 https://www.instagram.com/loewe/
《하퍼스 바자 싱가포르(Harper’s Bazaar Singapore)》 (2026. 05. 16.). Loewe Foundation Craft Prize 2026: The Winner, Standout Pieces And More, https://www.harpersbazaar.com.sg/lifestyle/loewe-craft-prize-exhibition-2026
《엘르 싱가포르(ELLE Singapore)》 (2026. 05. 16.). The LOEWE Foundation Craft Prize 2026 Lands In Singapore, https://elle.com.sg/life-culture/loewe-foundation-craft-prize-2026/
《더 스트레이츠 타임즈(The Straits Times)》 (2026. 05. 14.). Olympics of craft’ Loewe Foundation Craft Prize held in Singapore for first time, https://www.straitstimes.com/life/style/olympics-of-craft-loewe-foundation-craft-prize-held-in-singapore-for-first-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