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튀르키예 한류를 관찰하면 가장 강렬한 변화는 숫자가 아니라 사람에게서 나타난다. 오는 9월 이스탄불 라이프 파크에서 케이팝 이스탄불 페스티벌 소식이 5월 내내 SNS를 달궜고, 치열한 티켓 경쟁까지 이어지면서 한류 팬덤의 열기가 다시 한번 확인됐다. 그러나 지금 튀르키예 한류가 보여주는 변화는 공연장 안보다 공연장 밖에서 더욱 선명하게 나타난다. 한류가 콘텐츠 소비를 넘어 일상 속 생활문화로 스며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즈미르에 사는 오즈게 셰뇌즈(Özge Şenöz)가 그 변화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4년 전 그녀는 틱톡에서 짧은 영상 하나를 우연히 보게 됐다. 안경을 쓰는 순간 눈앞의 아이가 자신이 아끼던 강아지의 환생임을 알게 되는 장면이었다. “그 발상이 너무 신기해서 드라마를 바로 찾아봤어요. 그때부터 제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죠.” 그렇게 처음 제대로 본 한국 드라마는 <구미호뎐>이었다. 이후 한국 드라마의 매력에 빠진 오즈게 씨는 화면 속 한국을 자신의 생활 속에서 직접 경험하고 싶어졌다.

< 오즈게 씨가 한식당 셰프로 일하던 당시 모습 – 출처: 본인 제공 >
그 마음은 그녀를 한식당 홀 서빙으로 이끌었고, 2년 뒤에는 한식 셰프라는 새로운 역할로 이어졌다. 지금은 한국어능력시험(TOPIK) Ⅱ를 준비하며 한국 이주까지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있다. 오즈게 씨의 사례가 특별한 이유는 그것이 예외적인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튀르키예 곳곳에서 이와 비슷한 경험들이 조용히 쌓이고 있다. 한류의 경계는 이제 ‘콘텐츠 소비’를 넘어 밥상 위와 일터 안으로, 나아가 개인의 인생 계획 속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5월 튀르키예 한류의 핵심 키워드를 하나로 꼽는다면 ‘생활화’다. 그리고 그 생활화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 주는 영역은 다름 아닌 한국 푸드다.
▲ ‘이 음식이 한식이에요?’에서 ‘또 왔어요’로 — 한식 소비의 질적 변화
오즈게 씨가 처음 한식당을 찾은 것은 인스타그램에서 집 근처 한식당의 오픈 소식을 접하면서였다. “로제 떡볶이를 무료로 나눠준다는 거예요. 드라마에서 그렇게 많이 봤는데, 먹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거든요.” 오픈 첫날,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긴 대기 줄이었다. 줄을 서며 만난 사람들은 한국 푸드뿐만 아니라 한국 드라마, 한국 영화, 케이팝까지 즐기는 한류 팬들이었다. 한식 한 그릇을 맛보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한류를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을 마주한 경험은 오즈게 씨에게 작지만 강렬한 충격으로 남았다.
몇 시간을 기다린 끝에 처음 맛본 김밥과 자장면은 지금도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 오즈게 씨는 식당 벽면에 붙은 구인 광고를 보고 곧바로 지원했고, 다음 날부터 홀 서빙을 시작했다. 이후 2년간 한식 조리 업무를 배우며 한식 셰프로 성장했다. 그녀에게 한식당은 단순히 음식을 파는 공간이 아니었다. 손님들에게 한식 한 그릇을 건네는 일은 동시에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손님들에게 한식과 한국 문화를 소개했을 때, 그들이 공감하고 좋아해 주는 모습이 정말 보람 있었어요. 그렇게 일하다 보니 어느새 저도 한류 문화를 전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어요.”
이스탄불의 한식당들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이스탄불 무역관이 2026년 2월 발표한 보고서는 이러한 흐름을 한식 소비 행태의 질적 전환으로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튀르키예 소비자들은 한식을 처음 접할 때는 “이건 어떤 음식인가요?”라는 호기심에서 출발하지만, 재방문 단계에서는 “어떤 스타일의 한식인가요?”를 묻기 시작한다. 단순히 메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취향에 맞는 한식을 찾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는 의미다. 보고서는 한식이 더 이상 특별한 날 즐기는 이색 음식이 아니라 점심 식사와 가벼운 간식, 데이트 메뉴로 자연스럽게 선택되는 일상적 소비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고 평가했다.
▲ 한국 드라마가 열고, 한국 푸드가 채운다 — 콘텐츠에서 식탁으로
오즈게 씨가 드라마 속 한식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더 킹: 영원의 군주>였다. “좋아하는 남성에게 잡채 이야기를 하며 감정을 표현하는 장면이 나와요. 너무 낭만적이더라고요.” 그녀는 드라마를 보며 노트에 한식 레시피를 적어 두고, 냉장고에 메모를 붙여가며 한식을 독학했다. 이제 고추장은 냉장고에서 가장 먼저 채워 놓는 식재료가 됐다. "한식은 물론 튀르키예 요리를 할 때도 고추장을 사용해요. 음식에 완전히 새로운 풍미를 더해줘서 없어서는 안 될 재료가 됐어요."
오즈게 씨의 경험은 개인적인 사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튀르키예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는 흐름이다. 2025년 하지 바이람 벨리 대학교가 1,08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학술 연구에 따르면 응답자의 77%가 ‘한국 드라마를 시청한 후 한식을 처음 접했다’고 답했다. 중동공과대학교(METU) 연구 역시 드라마를 통해 한식을 접한 시청자들이 한국 식당 방문이나 한국 식재료 구매로 이어지는 행동 변화를 보였다고 분석했다. 오즈게 씨는 이러한 흐름이 얼마나 깊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드라마 한 편에서 시작된 호기심은 4년 만에 한식당 취업과 한국어 학습을 거쳐 이주 준비로까지 이어졌다. 콘텐츠가 문화 소비를 이끌고, 그 문화가 다시 개인의 삶과 진로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이 그녀의 경험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 한국 푸드 너머, K-액세서리까지 — 생활 속으로 번진 한류
오즈게 씨의 한류 사랑은 한국 푸드에만 머물지 않는다. 현재 지역 여성지원교육센터에서 재봉을 배우며 한복 키링을 직접 만들어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있다. 한국어 강좌에서 만난 친구 하티제(Hatice)는 이 선물을 계기로 한국 문화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2023년 한국어 강좌에서 처음 만나 김치 담그기와 김밥 만들기, 만두 빚기 등 다양한 한식 체험 행사에 참여해 왔다.

< 양념치킨과 떡볶이를 직접 만들어 지인들과 나누며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오즈게 씨 - 출처: 본인 제공 >

< 한복 키링을 제작하는 오즈게 씨 - 출처: 본인 제공 >
이 같은 일상적 한류 소비는 이즈미르를 넘어 튀르키예 전역에서 확인된다. 주튀르키예 한국문화원이 2013년부터 운영해 온 '카라반 한국문화의 날'은 튀르키예 81개 주 가운데 66개 주를 직접 순회하며 한국 문화를 소개해 왔다. 지난해 5월 에르진잔(Erzincan), 시바스(Sivas), 요즈가트(Yozgat) 등 3개 지방 도시에서 열린 행사에는 1,500명 이상이 참여해 수도권을 넘어 지방에서도 한류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같은 해 11월 앙카라 힐튼 호텔에서 열린 '2025 한식 주간(Korean Culinary Days)' 역시 이러한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다. 외교단과 튀르키예 정부 관계자, 한류 팬들이 함께한 이번 행사는 5일 동안 운영됐으며, 매일 모집 정원 100명이 모두 마감돼 총 500명이 참여했다. 전승철 한국문화원장은 "인플루언서들의 활발한 SNS 확산 덕분에 기대 이상의 한식 홍보 효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 숫자로 보는 튀르키예의 한국 푸드 시장 — 수출 통계가 말하는 것
이 같은 현장의 열기는 수출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KOTRA 이스탄불 무역관에 따르면 2025년 8월까지 튀르키예로의 한국 식품 수출액은 3,000만 달러를 넘어섰다. 같은 해 9월 이스탄불에서 열린 월드푸드 이스탄불 2025(WorldFood Istanbul 2025)에서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Korea Agro-Fisheries & Food Trade, 이하 aT)가 국내 13개 수출업체와 함께 한국관을 운영하며 320만 달러 규모의 수출협약을 체결했다. 튀르키예 시장의 성장세는 전 세계 한국 푸드 확산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2025년 한국 푸드 수출액은 전년 대비 5.1% 증가한 136억 2,000만 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한국 라면 수출이 21.9% 증가하며 성장세를 이끌었다. aT는 튀르키예를 유럽과 중동을 연결하는 전략적 교역 거점으로 평가하며 한국 푸드의 중동·유라시아 시장 확대를 위한 핵심 거점으로 주목하고 있다.
▲ 생활화를 넘어 이민으로 “저에게 한국은 목적지가 됐어요”
오즈게 씨는 한국 이주를 꿈꾸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한국이 저한테는 꼭 튀르키예처럼 가깝게 느껴져요.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 사람으로 태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예요.” 그녀의 목표는 막연한 동경에 머물지 않는다. 현재 한국어능력시험(TOPIK) 3급 수준에서 TOPIK Ⅱ 준비와 회화 연습을 병행하고 있다. “한강에서 돗자리 펴고 치맥과 김밥을 먹는 게 로망이에요. 제주도에서 해녀 분들과 함께 바다에 들어가 잠수도 해 보고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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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오즈게 씨 - 출처: 본인 제공 >
오즈게 씨 한 사람의 이야기는 더 넓은 흐름 위에 놓여 있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이 발표한 2026 해외 한류 실태조사(30개국 2만 7,400명)에서 자국 내 한류 분야 선호도 1위는 한국 푸드(55.1%)로, 케이팝(54%)과 한국 뷰티(52.6%), 한국 드라마(51.3%)를 모두 앞섰다. 케이팝이 ‘한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로 9년 연속 1위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 한국 푸드는 실제 생활 속 소비 영역에서 가장 깊숙이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이는 한류가 콘텐츠 소비를 넘어 일상과 취향, 나아가 삶의 선택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언가 해보고 싶은 게 생겼다면 지금 바로 도전하는 거예요. 무언가를 하기에 늦은 때란 없어요.”
드라마 한 편에서 시작된 관심이 한식과 한국어 학습, 그리고 한국 이주 계획으로 이어진 오즈게 씨의 이야기는 오늘날 튀르키예 한류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오즈게 셰뇌즈(Özge Şenöz) 제공
- 《뉴스1》 (2025.11.23). 세계인이 자주 먹고 즐기는 한식은 ‘이것’…2위 김치∙3위 비빔밥, https://www.news1.kr/economy/agri-food/5984743
- 《연합뉴스》 (2023.11.27). K콘텐츠가 불러온 한식 열풍…음식 넘어 문화 알리기로 대중화, https://www.yna.co.kr/view/AKR20231126018400005
- 하지 바이람 벨리 대학교(Hacı Bayram Veli Üniversitesi) (2025). The Experience of Korean Cuisine Among Korean Drama Viewers in Türkiye, https://search.trdizin.gov.tr/en/yayin/detay/13366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