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토론토 디그넘 갤러리(Dignam Gallery)에서 '한지, 캐나다를 만나다 – 천년의 한국 종이예술(A Thousand Years of Korean Paper Art – Hanji Meets Canada)'가 열렸다. 캐나다 최초의 한지 순회전으로 기획된 이번 전시는 한국의 한지 작가 7인의 작품을 현지 관람객들에게 소개하는 자리였다. 아시아 문화유산의 달(Asian Heritage Month)을 맞아 열린 이번 행사에는 한국 문화계와 캐나다 문화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개막식에서는 축사와 함께 한지 제작 과정을 소개하는 영상이 상영됐으며, 아티스트 토크와 한국 전통 대금 산조 공연도 진행돼 관람객들의 관심을 모았다.

<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이 한지 샘플을 직접 만져보고 있다 - 출처: 통신원 촬영 >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낙수지와 색한지, 닥섬유, 한지 스카프 등 다양한 한지 샘플이었다. 관람객들은 직접 손으로 샘플을 만져보며 "이게 정말 종이로 만든 것이냐"고 묻거나 감탄을 표했다. 종이로 만든 옷감과 실, 그리고 이들 모두가 한지의 다양한 활용 사례라는 설명을 들은 뒤에도 한동안 전시대 앞을 떠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 옆에는 전날 열린 워크숍에서 캐나다 예술가들이 한지를 활용해 제작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처음 한지를 접한 참가자들이 만든 작품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높은 완성도를 보여 관람객들의 관심을 끌었다.

< 개막일 전 워크숍에서 한지 작품을 제작하는 캐나다 예술가들 - 출처: 통신원 촬영 >
한 참가자는 "피노키오를 재현해 봤는데, 한지에 대해 알아갈수록 놀라웠다. 원하는 것을 종이로 표현하는 데 제약이 없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며 "한지를 처음 접했는데, 기존에 알고 있던 종이예술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 같아 앞으로도 계속 배우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개막식 전날 진행된 워크숍에는 약 10명의 캐나다 예술가가 참여했다. 당초 3시간으로 예정됐던 프로그램은 참가자들의 높은 관심 속에서 4시간 이상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 개막식 전날 열린 한지 워크숍 전경 - 출처: 통신원 촬영 >
캐나다에서 섬유 아트 작업을 하고 있는 또 다른 참가자는 "워크숍 이후 한지에 완전히 매료됐다. 집에 돌아간 뒤에도 작업을 멈출 수 없었다"며 "직물을 다루는 것과 비슷하면서도 물에 적셔 원하는 형태로 빚을 수 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이전부터 일본의 와시(Washi)나 중국 종이를 활용해 작업해 온 한 참가자 역시 "한국의 한지를 정말 사랑하게 됐다"며 "한지로 작업하는 과정이 무척 즐거워 한지를 볼 때마다 구해 작업에 활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이처럼 워크숍에 참여한 캐나다 예술가들은 한지의 독특한 질감과 활용 가능성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특히 종이와 섬유를 활용한 작업 경험이 있는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한지가 새로운 창작 재료로서 지닌 가능성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졌다.

< 한지 전시가 열리고 있는 디그넘 갤러리(Dignam Gallery) 전경 - 출처: 통신원 촬영 >
행사를 주최한 OIS 아트 오브 캐나다(OIS Art of Canada)의 이제니 이사장은 "일본 문화가 서구 사회에 먼저 소개되면서 캐나다에서는 '메이드 인 코리아'라고 적혀 있어도 한지를 일본 종이로 인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한지가 한국의 전통 종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천 년의 역사를 지닌 한국의 전통 재료인 한지를 소개했을 때 캐나다 예술가들이 큰 관심을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OIS Art of Canada는 2022년부터 한·캐 미술교류전, 전통 규방공예 워크숍, 청년작가 교류전 등 양국 문화예술 교류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현대미술 중심으로 진행돼 온 교류 범위를 한국 전통문화 영역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 한복을 입은 두 작가가 관람객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출처: 안시현 작가 제공 >
이번 전시에는 국내 주요 예술대전 수상 경력을 지닌 한지 작가 7인이 참여해 설치·회화·조형·공예 등 다양한 형식으로 한지의 확장된 예술성을 선보였다. 특히 현장에 참석한 지정민(Jeong-min Ji)·안시현(Ellian) 작가는 한복을 입고 관람객들을 맞이했다. 관람객들은 작가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며 관심을 보였고,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과 작업 과정에 대해 직접 설명하며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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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람객들이 지정민 작가의 '겹과 결'을 감상하고 있다 - 출처: 통신원 촬영 >
지정민 작가가 이번 전시에 출품한 작품 <겹과 결>은 2024년 전국한지공예대전 대상 수상작을 다시 제작한 작품이다. 지 작가는 “'겹'은 쌓아온 시간과 지나온 시간들을 의미하며, '결'은 우리가 살아온 흔적과 기억을 질감으로 표현한 것"이라며 "한지를 예술에 접목하기 위해 기존 기법을 익히는 동시에 새로운 표현 방식을 실험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지를 1밀리미터 간격으로 잘라 주름처럼 표현하거나, 틀에 한지를 입혀 형태를 찍어내는 캐스팅 기법 등을 활용해 전통성과 현대적 실험을 하나의 화면 안에 담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참여 작가인 안시현(Ellian)은 한지 위에 크리스털, 자개, 금박, 유화적 질감 등 이질적 재료를 결합하는 혼합 매체 작업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 전통의 달항아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선보였다. 달항아리는 조선시대 백자 항아리로, 한국 전통문화에서 풍요와 평안, 번영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 작가는 달항아리의 둥글고 넉넉한 형태에 크리스털을 더해 전통적 상징성과 현대적 감각을 결합했다. 안 작가는 "달항아리는 풍요와 평안, 번영의 상징"이라며 "그 위에 현대적인 크리스털을 더해 전통을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 유봉희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관람객 - 출처: 통신원 촬영 >
나머지 다섯 작가의 작품 역시 한지가 다양한 예술 언어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유봉희 작가는 한지를 물에 적시고 주물러 가죽처럼 단단하게 만든 뒤 그 위에 바느질과 자수를 더한 작품들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탐구했다. 오강숙 작가는 한지를 정교하게 자르고 접어 둥근 접시 형태의 입체 작품을 제작해 소통과 공존의 의미를 시각화했다. 신철우 작가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인물상을 황토와 전통 먹, 옻칠을 활용해 한지 위에 구현했으며, 김선강 작가는 자유롭게 흩어지고 모이는 움직임을 표현한 설치 작품으로 생명의 탄생과 소멸을 이야기했다. 송미령 작가는 한지의 기하학적 무늬를 적용한 팔각 바느질함을 통해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표현했다. 이처럼 참여 작가들은 회화와 조형, 설치, 공예 등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한지를 해석하며 그 예술적 가능성과 표현의 확장성을 선보였다.
한지는 천 년의 시간 동안 한국인의 삶과 예술 속에서 이어져 온 전통 재료다. 이번 전시와 워크숍은 그 한지가 낯선 땅 캐나다의 예술가와 관람객들을 만나 새로운 문화적 접점을 만들어낸 자리였다. 전통과 현대 예술을 아우르는 한지가 앞으로 캐나다 예술가들의 작품 속에서 어떤 새로운 예술적 방식으로 확장될지 주목된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