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만난 한국 영화, <가능한 사랑(Possible Love)>과 <암살자(들)(The Assassin(s))>
- 노동의 현실과 한국 현대사가 캐나다 관객과 만나다 -
제51회 토론토국제영화제(Toronto International Film Festival, TIFF)가 지난 9월 10일부터 20일까지 토론토에서 열렸다. 올해 영화제에는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Possible Love)>과 허진호 감독의 <암살자(들)(The Assassin(s))> 등 여러 한국 영화들이 초청돼 캐나다 현지 관객들을 만났다.
특히 영화제 폐막일에 발표된 국제 관객상(International People’s Choice Award)에서 <가능한 사랑>이 첫 번째 차점작(First Runner-up), <암살자(들)>이 두 번째 차점작(Second Runner-up)에 나란히 선정됐다. 사이먼 스톤(Simon Stone) 감독의 <엘시노어(Elsinore)>가 이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된 가운데 두 한국 영화가 관객 투표 상위권에 함께 이름을 올렸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지난 14일 월요일 통신원이 찾은 <가능한 사랑> 상영관은 관객들로 가득했다. 2018년 <버닝(Burning)>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창동 감독이 8년 만에 선보인 신작이라는 점과 전도연, 설경구, 조인성, 조여정 등 잘 알려진 배우들의 출연으로 영화제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아왔다. 빠른 사건 전개보다는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관계를 깊이 따라가는 작품이고 상영 시간도 164분으로 긴 편이지만, 관객들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높은 집중력을 보였다.

< 이창동 감독이 배우들을 소개하고 있다 - 출처: 통신원 촬영 >
영화는 해고 노동자와 그의 아내, 이들의 삶을 촬영하려는 다큐멘터리 감독과 남편 등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부부의 만남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해고와 노동쟁의가 개인과 가족에게 남긴 상처와 일을 잃은 뒤 흔들리는 인간의 정체성과 존엄, 경제적 차이가 인간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준다. 특히 통신원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영화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카메라에 담는 행위 자체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진다는 점이었다. 고통받는 사람의 현실을 카메라에 담는 것은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는 일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아픔을 자신의 작품을 위한 소재로 사용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영화 속 다큐멘터리 감독을 따라가다 보면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되었다.
상영 후 마련된 관객과의 대화(Q&A)에서도 이러한 문제의식은 이어졌다. 이창동 감독은 노동이 사라져 가고 사람 사이의 관계가 끊어져 가는 시대에 영화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질문하고 싶었다고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관객들도 노동과 계급의 문제뿐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타인의 고통을 영화로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 질문을 이어갔다. 한국 사회의 노동 현실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토론토 관객들에게도 인간과 관계, 영화의 역할을 생각하게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한 조여정 배우, 조인성 배우, 설경구 배우, 이창동 감독 - 출처: 통신원 촬영 >
이창동 감독은 이번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작품 상영 외에도 의미 있는 상을 받았다. 지난 13일 열린 티프 트리뷰트 어워즈(TIFF Tribute Awards)에서 티프 에버트 감독상(TIFF Ebert Director Award)을 수상했다.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Roger Ebert)의 이름을 딴 이 상은 영화계에 독창적인 시각과 의미 있는 영향을 끼친 감독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가능한 사랑> 역시 토론토국제영화제에 앞서 열린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Venice International Film Festival)에서 은사자상 심사위원대상(Silver Lion – Grand Jury Prize)을 수상했다. 베니스에서의 작품 수상에 이어 토론토에서는 감독의 영화 세계 전체를 조명하는 상을 받으면서 이창동 감독과 그의 신작에 대한 관심이 이어졌다.
이어 지난 17일 목요일 오후 9시 30분에는 허진호 감독의 <암살자(들)>을 관람했다. 늦은 시간에 시작하는 상영이었지만 객석은 가득 찼다. 영화는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에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겨냥한 총격이 발생하고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목숨을 잃은 사건을 모티프로 삼는다. 실제 사건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경찰과 언론인들이 사건을 둘러싼 의문과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한국 현대사의 구체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한국의 역사적 상황에 익숙하지 않은 캐나다 관객들에게 이 영화가 어떻게 다가갈지도 궁금했다. 그러나 영화가 시작되자 객석은 작은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 상영 중 자리를 뜨는 관객도 거의 볼 수 없었고, 사건의 진실을 따라가는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높은 집중도가 계속됐다.
영화가 끝난 뒤에는 시간이 거의 자정에 가까웠지만 허진호 감독과 배우들이 참여한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졌고 많은 관객들이 그대로 자리를 지켰다. 특히 흥미로웠던 순간은 이민호 배우가 오히려 캐나다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졌을 때였다. 한국인들에게 이 영화가 어떻게 다가갈지는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지만, 한국 역사를 잘 모르는 캐나다 관객들은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가 궁금하다고 물었다. 이에 한 캐나다 관객은 영화를 통해 자신이 알지 못했던 한국의 역사를 더 알 수 있었다고 답했고, 또 다른 관객은 영화를 본 뒤 한국의 역사와 문화가 더 궁금해졌다고 말했다. 한국 현대사의 특정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가 현지 관객들에게 한국을 새롭게 알아가는 계기가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음에도 한 명도 자리를 뜨는 이가 없었던 ‘암살자(들)’ 관객과의 대화. 이민호 배우, 박해일 배우, 유해진 배우, 허진호 감독 - 출처: 통신원 촬영 >
상영관에서 만난 또 다른 관객은 토론토 동쪽 오샤와(Oshawa)에서 친구들과 함께 왔다고 했다. 그는 15년째 친구들과 토론토국제영화제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자신들의 전통이 됐으며, 올해는 친구가 선택한 <암살자(들)>을 함께 보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 현대사에 대한 특별한 사전지식을 가지고 작품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지만 영화를 본 뒤에는 “정말 잘 선택한 것 같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영화제를 즐기기 위해 선택한 한 편의 영화가 자연스럽게 한국 현대사의 한 장면을 접하는 기회가 된 것이다.

< 로이톰스홀 4000여 석 전석 매진에 이어, 프린세스 오브 웨일즈 극장에서도 매진 행렬을 이어간 ‘암살자(들)’ - 출처: 통신원 촬영 >
이번 영화제에서 만난 73세의 한 캐나다 여성 관객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그는 약 3년 전부터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보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 영화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이제는 토론토국제영화제에 한국 영화가 초청되면 직접 찾아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 됐으며, 2024년에는 우민호 감독의 <하얼빈(Harbin)>을 관람했고 올해는 <암살자(들)>까지 찾아보면서 한국의 근현대사에도 점차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중심으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다룬 작품으로, 2024년 토론토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Gala Presentations) 부문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됐다. 서로 다른 시기의 한국사를 다룬 <하얼빈>과 <암살자(들)>을 연이어 찾아보면서 한국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넓혀가고 있다는 현지 관객의 이야기는 한국 영화가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접하는 하나의 통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가능한 사랑>과 <암살자(들)>은 소재와 영화의 형식에서 큰 차이가 있다. <가능한 사랑>은 오늘날 노동의 변화와 해고가 남긴 상처, 경제적 차이와 인간관계를 다루는 반면 <암살자(들)>은 1970년대 한국 현대사의 사건에서 출발해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을 그린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 한국 사회의 구체적인 현재와 역사적 현실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도 캐나다를 비롯한 세계 관객들에게 새로운 질문과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번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러한 현지 관객들의 반응이었다. 긴 상영 시간에도 객석을 지키고,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도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하며, 영화를 본 뒤에는 한국의 역사와 사회에 대해 더 알고 싶다고 말하는 관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영화제 폐막과 함께 두 작품이 국제 관객상 부문에서 나란히 첫 번째와 두 번째 차점작으로 선정된 것도 현장에서 느낀 이러한 관심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영화의 해외 진출은 국제영화제 초청이나 수상 결과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상영관에서 한국의 이야기가 현지 관객들과 어떻게 만나고 다시 한국 사회와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이번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가능한 사랑>과 <암살자(들)>은 서로 다른 한국의 이야기를 캐나다 관객들에게 전하며 한국과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을 넓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토론토국제영화제(Toronto International Film Festival 2026) 웹사이트,
https://tiff.net/press/news/tiff-announces-2026-award-winners
- 토론토국제영화제(Toronto International Film Festival 2026)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tiff_net),
https://www.instagram.com/p/DdZiSFBSuQ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