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말레이 소설 장르에서 만난 한류, 케이릿(K-Lit)
- 말레이 소설에 접목된 한류 콘텐츠 -
말레이시아 출판업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 중 하나는 말레이어 문학(Buku Bahasa Melayu)이다. 다문화·다언어 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는 말레이어를 비롯해 중국어와 타밀어, 영어 등 다양한 언어가 사용되며, 각 민족 공동체는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적 특성에 맞는 영화와 문학, 콘텐츠를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말레이계 인구가 전체 인구의 약 70%를 차지하는 만큼 말레이어로 제작·출판되는 문학과 콘텐츠 시장도 상당한 규모를 형성하고 있다. 이처럼 말레이 문학이 현지 출판·문화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바로 말레이시아 소설 축제(Festival Novel Malaysia)였다.
통신원은 지난 25일 말레이시아 샤알람에 위치한 쇼핑몰 카랑크라프 몰(Karangkraf Mall)에서 열린 <말레이시아 소설 축제(Festival Novel Malaysia·FNM)> 현장을 찾았다. 9월 23일부터 27일까지 5일간 열린 이번 축제는 독자와 작가, 출판사, 창의산업 종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지식을 공유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협업 기회를 모색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다양한 출판 관련 행사가 열리는 말레이시아에서 말레이 문학과 소설을 전면에 내세운 축제가 개최됐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 '말레이시아 소설 축제' 포스터 캡처 – 출처: 크랑크라프 인스타그램 계정(@novelkarangkraf) >
이번 축제에서 통신원의 눈길을 끈 것은 ‘케이릿(K-Lit)’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는 새로운 형태의 한국 콘텐츠를 현지화한 말레이 문학이었다. 그동안 말레이시아에서 접해온 한류의 현지화가 주로 한국 드라마나 케이팝을 말레이시아의 문화적 맥락에 맞게 재해석하는 방식이었다면, 이번에는 한국 콘텐츠의 요소를 말레이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 안으로 가져와 변주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특히 일부 말레이 소설에서는 한국 드라마에서 볼 법한 캐릭터와 서사적 요소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이는 케이팝, 드라마와 같은 한국 콘텐츠에서 익숙한 인물의 이미지와 관계, 감정 표현 방식 등을 소설의 형식으로 옮겨온 것처럼 느껴졌다.

< 한국 드라마에서 볼 법한 캐릭터가 곳곳에 등장하는 '말레이시아 소설 축제' – 출처: 통신원 촬영 >
이처럼 한류 콘텐츠가 말레이 소설에 자연스럽게 접목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말레이 소설의 장르적 특성과 주요 독자층이 자리하고 있다. 현지 출판 관계자들에 따르면 말레이 소설은 주로 말레이어로 쓰이며, 로맨스와 호러 등 장르문학이 강세를 보이고 특히 젊은 독자층을 주요 대상으로 한다.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에 익숙한 젊은 독자들이 많은 만큼, 한국 콘텐츠에서 익숙한 서사와 캐릭터, 이미지 등이 말레이 소설에 활용되는 것 역시 이러한 독자층의 문화적 취향과 무관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다만 한국 소설과 말레이시아 소설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도 있었다. 망고스틴(Mangosteen) 출판사의 하다피(Hadafih)는 한국과 말레이시아의 소설이 서로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말레이시아에서는 로맨스 소설이 특히 인기가 높고, 남성 독자들도 로맨스 장르를 많이 읽는다”며 한국과 말레이시아가 사랑과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말레이시아 독자들은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면, 한국은 감정을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점이 흥미롭다”며 “한국 소설은 한국 드라마처럼 다채롭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어 “말레이시아에서 한국 드라마의 인기가 높은 만큼 현지 독자들은 한국 소설에서도 드라마처럼 인물의 감정이나 관계와 같은 부분에 관심을 갖는다”며 최근 말레이 소설에서 나타나는 한국 콘텐츠의 영향에 대해 설명했다.
이러한 영향은 책을 구성하고 판매하는 방식에서도 나타났다. 부스를 둘러보면서는 실제 케이팝 산업에서 익숙한 방식이 문학에 접목된 것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예를 들어 아이돌 산업에서 볼 법한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거나 귀엽고 아기자기한 디자인으로 공간을 꾸민 부스가 눈에 띄었다. 또한 일부 작품은 책을 구매하면 캐릭터를 활용한 키링을 증정하는 등 문학과 굿즈를 결합한 상품 구성을 선보이고 있었다. 전통적인 출판업계에서 연상되는 다소 정적이고 딱딱한 분위기보다는 캐릭터와 시각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독자와 소통하는 방식이 두드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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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릭터와 시각적 요소가 두드러지는 말레이 문학 부스 - 출처: 통신원 촬영 >
책에서도 한국 드라마의 등장인물을 연상시키는 외모의 캐릭터가 등장하고, 소설 초반에는 등장인물을 이미지와 함께 소개하는 구성이 눈에 띄었다. 텍스트 중심의 소설에 웹툰이나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시각적 요소를 더한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이야기의 구성에서도 나타났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는 본문이 일반적인 소설 형식으로 이어지다가 ‘투 비 컨티뉴드(To be continued)’라는 문구와 함께 다음 이야기를 예고하는 방식이 눈길을 끌었다. 한 권의 책을 완결된 문학작품으로 제시하는 전통적인 소설의 형식에서 벗어나, 드라마와 웹툰, 케이팝 콘텐츠에서 익숙한 연속성과 캐릭터 중심의 콘텐츠 소비 방식을 소설에 접목한 것이다.

< 한국 콘텐츠가 반영된 케이릿 - 출처: 통신원 촬영 >
이처럼 케이릿은 단순히 한국 콘텐츠의 요소를 차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의 콘텐츠 문법을 말레이시아의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번 축제를 주관한 카랑크라프(Karangkraf)도 일찍부터 한국 콘텐츠와 출판문화에도 관심을 보여왔다. 카랑크라프트는 1978년 소규모 출판사로 시작해 현재 말레이시아를 대표하는 미디어 기업 중 하나로 성장했다.

< 케이-문학을 소개하는 안내판 – 출처: 통신원 촬영 >
카랑크라프는 2023년 ‘케이-문학: 실험적 스토리텔링(K-Lit Eksperimen Cara Bercerita)’을 개최하고, 한국 드라마의 이야기 전개 방식에 말레이시아의 문화적 특성을 접목한 ‘케이릿(K-Lit)’을 선보였다. 당시 케이릿은 반전 있는 줄거리와 새로운 소재를 말레이시아의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에 결합한 것이 특징이라고 소개됐다. 5권의 소설이 서로 연결되면서도 반복되는 하루 동안의 여정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이는 한국드라마에서 영감을 받은 서사 구조에 말레이시아의 문화를 접목해 새로운 형태의 현지 문학을 시도한 것이다.
이번 말레이시아 소설 축제에서 만난 케이릿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말레이시아 독자의 취향과 현지 문화에 맞게 한국의 서사와 콘텐츠 문법을 재해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했다. 한국 콘텐츠는 이처럼 말레이시아에서 소비되는 것을 넘어 현지 창작자들의 새로운 이야기와 형식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아직 케이릿이 말레이시아 출판시장의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다고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한국 콘텐츠와 현지 문학의 결합이라는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드라마와 케이팝 산업 속 캐릭터와 굿즈, 연출과 구성 방식 등이 향후 어떤 새로운 이야기와 형식으로 출판산업에서 발전할지 주목된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시아캅 켈리(Siakap Keli)≫ (2026. 09. 11). Festival Novel Malaysia 2026 - "Segalanya Bermula Dengan Cinta",
https://siakapkeli.my/articles/festival-novel-malaysia-2026-segalanya-bermula-dengan-cinta
- 카랑크라프(Karangkraf) 웹사이트,
https://www.karangkraf.com/
- 부쿠 카랑크라프(Buku Karangkraf) 웹사이트,
https://grupbuku.karangkraf.com/novel-karangkraf-kl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