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주빈국으로 참여한 제20회 메데인 <도서 문화 축제>
- 문학과 공연, 체험으로 가까워진 한국과 콜롬비아… 번역 확대는 숙제-
제20회 메데인(Medellín) <도서 문화 축제(La Fiesta del Libro y la Cultura)>가 ‘독서의 여정(Travesías de la lectura)’를 주제로 9월 11일부터 20일까지 열렸다. 올해는 메데인이 2027년 세계 책의 수도로 선정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 평년보다 더 큰 규모로 축제가 진행됐다.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가한 이번 축제는 문학과 예술을 아우르는 약 3,600개의 프로그램이 국내외 초청 인사 400여 명과 함께 진행됐다. 메데인시에 따르면 행사 기간 동안 56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현장을 찾았으며, 110억 콜롬비아 페소(약 44억 원) 이상의 판매액과 20만 부가 넘는 도서 유통량을 달성하는 높은 성과를 거두었다. 주빈국 한국은 작가 7인과 번역가 1인 그리고 주콜롬비아 대한민국 대사관과 아시아-이베로 아메리카 문화재단, 한국문학번역원, 한국예술종합학교, 보고타 세종학당, 메데인 시립대학교 아이티엠(ITM) 등이 참여해 10일간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방문객들을 만났다.

< ‘한국의 끼’로 강연 중인 최현국 주콜롬비아 대한민국 대사 - 출처: 통신원 촬영 >
11일 오후 8시 김원민 교수가 이끄는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의 ‘씻김굿’ 공연으로 본격적인 한국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김 교수는 “죽은 자들의 영혼을 씻겨서 위로해주고 좋은 곳으로 가시라는 제의식의 의미가 있는 ‘씻김’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단순히 우리의 전통을 재현하는 공연에서 벗어나, 과거의 아픔을 잊지 말고 기억하면서 바른 곳, 좋은 세상으로 함께 가자는 의미로 공연을 기획했습니다”라며 공연의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약 1시간 가량 이어진 공연은 광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의 호응 속에 진행됐다.
일부 장면에서는 단원들이 무대에서 내려와 악기를 연주하며 관객들 사이를 누볐다. 이런 연출은 한국의 흥과 멋을 현지 사람들에게 더 생생하게 전달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공연을 보러 온 카롤리나는 “콜롬비아와 한국이 지리적으로 굉장히 먼 나라인데, 이러한 공연과 문화 행사를 통해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좋아요”라며 소감을 이야기했다. 호세는 “저는 안티오키아 대학에서 악기를 배우고 있어요. 이번 공연에서 한국의 전통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번 공연은 제가 음악에 대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주었어요. 스토리가 있는 음악과 그에 어우러진 춤이 조화로운 공연이었어요. 아주 재미있었습니다”고 소감을 전했다. 주재형 공연단원도 “남미에서 공연을 할 때마다 느끼지만, 어느 나라보다도 호응이 뜨거워서 저희도 힘을 받아서 더 열심히 공연을 한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라며 현장의 뜨거운 열기를 담은 소감을 전했다.

<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의 ‘씻김굿’ 공연 - 출처: 통신원 촬영 >
행사 기간 동안 다양한 분야의 한국작가 7인(김언수, 박서련, 은희경, 이금이, 정유정 소설가와 이재훈 시인, 김금숙 그래픽노블 작가)과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외 다수 소설을 번역한 조구호 문학박사가 방문하여 한국 문학과 문학의 번역에 대해 알리는 시간을 가졌다. 담화 후에는 사인회를 통해 작가들과 독자들이 조금 더 가까이에서 소통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특히, 이재훈 시인은 소설이나 그래픽 노블처럼 긴 호흡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와는 달리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시의 특성을 잘 살려 무대에서 몇 편의 시를 직접 낭독하기도 했다. 메데인은 세계 최대 규모로 손꼽히는 <국제시축제(Festival Internacional de Poesía de Medellín)>가 열릴 정도로 시민들의 시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이다. 이런 맥락에서 시를 함께 낭송하고 듣는 문화가 자리 잡은 메데인에서 한국 시인의 낭송은 한국 문학과 현지 독자 사이의 거리를 좁히며 높은 호응을 얻었다.

< 시를 낭송하는 이재훈 시인 - 출처: 통신원 촬영 >
이번 <도서 문화 축제>는 한국의 문학 작품과 작가와 더불어 한국의 다양한 문화를 소개했다는 데에도 큰 의미가 있다. 메데인은 콜롬비아 제2의 도시이긴 하지만 한국과 관련한 문화 행사의 상당수가 수도 보고타(Bogotá)를 중심으로 열리는 만큼, 메데인 시민들이 한국 문화를 직접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
이번 축제에서는 이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는 여러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최현국 주콜롬비아 대한민국 대사는 ‘한국의 끼’라는 주제로 한국 문화를 시민들에게 소개했다. 한국관 한 켠에서는 콜롬비아의 특별한 역사를 다룬 만화가 전시되어 양국의 특별한 인연을 보여주기도 했으며, 민화를 통해 한국의 전통 예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또, 한국 영화 상영, 한복 체험이나 종이접기, 한글 이름 쓰기 등 다양한 체험활동이 진행되어 시민들이 한국 문화를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도왔다.

< 한복 입기 체험 중인 시민들 - 출처: 통신원 촬영 >
베로니카 수아레스 레스트레포(Verónica Suárez Restrepo) 메데인 문화국장은 “한국은 아주 풍부한 문학적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현대 문학에서는 시, 소설, 아동문학, 청소년문학, 그래픽 노블, 웹툰 등 다양한 창작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축제에서 한국은 문학뿐 아니라 영화, 음악, 비주얼 아트, 언어, 매듭 등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문화를 선보였습니다. 메데인 시민들이 한국 문화를 즐기고 이 과정에서 우리의 문화와 연결할 수 있는 접점을 찾거나 문화가 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 하나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걸 느끼길 바랍니다”라며 주빈국으로 참여한 한국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번 축제를 통해 한국의 다양한 문화를 소개하는 데에는 의미 있는 성과가 있었지만, 행사에 참여한 작가들의 담화와 프로그램에 대한 높은 관심에 비해 정작 이들의 작품을 스페인어로 읽을 수 있는 번역 단행본을 현지에서 찾기는 쉽지 않았다는 아쉬움도 남았다. 메데인 시민들의 한국 문학과 문화에 대한 뜨거운 반응과 관심이 실제 독서와 문화 교류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한국 작품을 현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콜롬비아가 세계 도서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시장은 아닌 만큼, 현지에서 접할 수 있는 한국문학 번역서는 영어 등 제3언어를 거쳐 스페인어로 번역된 뒤 수입·유통되는 여러 단계를 거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이 때문에 한국 작품이 영어권과 스페인어권 시장에서 먼저 주목받은 이후 콜롬비아 독자들에게 소개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문학에 대한 현지의 관심이 실제 독서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이러한 유통 구조를 넘어 콜롬비아 독자들이 한국 작품을 직접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더욱 확대될 필요가 있다.
이번 행사에는 한국문학번역원도 참석해 현지 출판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국문학 번역 지원사업 등을 소개했다. 또한 조구호 박사는 번역가이자 한국문학 전문 출판사 화랑의 에디터 니콜라스 브라에사스, 번역가 팔로마 니콜라스 고메즈와 함께 한국어-스페인어 및 스페인어-한국어 문학 번역을 주제로 담화를 나눴다. 한국문학의 스페인어 번역과 현지 소개를 확대하기 위한 이러한 노력이 앞으로 어떤 결실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2027년 세계 책의 수도를 앞둔 메데인에서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가한 이번 축제는 문학을 넘어 공연과 체험으로 한국 문화를 직접 만날 수 있었던 뜻깊은 자리였다. 메데인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은 한국 문학과 문화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러한 관심이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독서와 문화 교류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번 만남이 지속적인 교류와 번역 확대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사진출처 및 참고 자료
- 통신원 촬영
- ≪엘 콜롬비아노(El Colombiano)≫ (2026. 09. 21). <Fiesta del Libro y la Cultura: 560.000 asistentes y las novedades que traerá la edición de 2027>,
https://buly.kr/G3G93WB
- <도서 문화 축제> 공식 웹사이트,
https://fiestadellibroylacultur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