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에서 바이올린까지… 9월 폴란드 무대를 채운 한국 음악가들
- 월드뮤직 축제·오케스트라 개막 공연·현대음악제로 이어진 한국 음악의 한 달 -
폴란드에서 ‘한국 음악’ 하면 여전히 케이팝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올 9월 폴란드 무대에서는 케이팝이 아닌 한국 음악가들이 잇따라 관객을 만났다. 바르샤바(Warszawa)의 월드뮤직 축제에서는 대금 소리가 울렸고, 발트해 연안 도시 소포트(Sopot)에서는 한국 바이올리니스트가 오케스트라의 새 시즌을 열었다. 달 말에는 판소리가 폴란드 대표 현대음악제 무대에 올랐다. 장르는 달랐지만, 한국 음악의 폭이 생각보다 넓다는 사실을 보여준 한 달이었다.
첫 무대는 9월 12일 바르샤바 드라마 극장(Teatr Dramatyczny)이었다. 11일부터 13일까지 열린 제22회 크로스 컬처 페스티벌(Festiwal Skrzyżowanie Kultur)은 바르샤바시 산하 문화기관 스토웨치나 에스트라다(Stołeczna Estrada)가 여는 행사로, 바르샤바를 대표하는 월드뮤직 축제로 꼽힌다. 올해 본무대에는 포르투갈 파두 가수 카르미뉴(Carminho), 쿠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출신 엘리아데스 오초아(Eliades Ochoa), 핀란드 민속음악 그룹 배르티내(Värttinä), 말리의 트리오 다 칼리(Trio da Kali) 등이 섰다. 세계 각지의 전통을 오늘의 소리로 풀어내는 음악가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이 축제의 소극장 무대에 한국 대표로 오른 사람이 대금 연주자이자 작곡가 백다솜이다. 백다솜은 대금과 소금 같은 한국 전통 관악기를 바탕으로 즉흥과 현대 음악을 넘나드는 작업을 해 왔다. 국가무형유산 이수자이기도 한 그는 2020년 첫 앨범 ≪무(無):낫싱니스(Nothingness)≫, 2023년 ≪거울도시(Mirror City)≫를 냈고, 올해는 카를로스 페레라(Carlos Ferrera)와 함께 ≪언밸런스(Unbalance)≫를 발표했다. 12일 오후 3시 공연 뒤에는 워크숍이 이어졌다. 관객들은 연주자가 음악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봤고, 폴란드 음악가 마리아 포미아노프스카(Maria Pomianowska) 교수가 함께 음악이 수학적 정확성과 직관이 만나는 지점에서 어떻게 태어나는지를 보여 줬다. 한국 전통악기가 세계 음악의 한 갈래로서 폴란드 관객 앞에 선 자리였다.

< 제22회 크로스 컬처 페스티벌에서 공연한 대금 연주자 백다솜 – 출처: 스토웨치나 에스트라다 웹사이트 >
일주일 뒤 무대는 북쪽 바닷가로 옮겨 갔다. 9월 19일 저녁 8시 30분, 소포트의 성모승천 ‘바다의 별’ 성당에서 폴란드 소포트 체임버 필하모닉(Polska Filharmonia Kameralna Sopot)의 2026/27 시즌 개막 공연이 열렸다. 새 시즌 첫 협연자로 무대에 선 사람은 바이올리니스트 윤소영이다. 윤소영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마단조를 연주했고, 2부에서는 시몬 모루스(Szymon Morus)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가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Eroica)>을 들려줬다. 윤소영과 폴란드의 인연은 깊다. 그는 2011년 포즈난(Poznań)에서 열린 헨리크 비에니아프스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Henryk Wieniawski Violin Competition)에서 1위와 금메달을 차지했다.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는 폴란드가 자랑하는 바이올린 작곡가의 이름을 딴 대회로, 1935년 바르샤바에서 처음 열린 뒤 지금은 포즈난에서 5년마다 열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바이올린 콩쿠르 가운데 하나다. 이 밖에도 메뉴인 콩쿠르, 오이스트라흐 콩쿠르 등에서 우승했고, 차이콥스키 콩쿠르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도 입상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와 독일 쾰른 음대, 스위스 취리히 예술대학에서 공부했고, 현재 1773년산 과다니니(Guadagnini) 바이올린으로 연주한다. 폴란드 콩쿠르에서 이름을 알린 한국 연주자가 15년이 지나 폴란드 오케스트라의 새 시즌을 여는 자리에 다시 선 셈이다. 이달 말에는 판소리가 이 흐름을 이었다. 9월 22일 바르샤바의 현대음악 공간 해시태그 랩(Hashtag Lab)에서는 제69회 바르샤바 가을 현대음악제(Warszawska Jesień) 연계 프로그램으로 ‘뉴 판소리: 자유로운 서사를 위한 의식(Rituals for Free Narratives)’이 공연됐다.

< 폴란드 소포트 체임버 필하모닉의 새 시즌 개막 무대에 선 바이올리니스트 윤소영 – 출처: ‘트루이미아스토’ 웹사이트 >
세 무대는 장르도, 무대도, 관객도 달랐다. 월드뮤직 축제, 교회에서 열린 오케스트라 공연, 현대음악제라는 서로 다른 자리에서 한국 음악가들은 각자의 언어로 관객을 만났다. 공통점도 있다. 세 무대 모두 한국만을 위한 행사가 아니라 폴란드의 축제와 오케스트라 시즌, 현대음악제 프로그램 안에서 열렸다는 점이다. 케이팝 너머의 한국 음악이 폴란드 관객에게 얼마나 더 깊이 다가갈 수 있을지 기대된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스토웨치나 에스트라다(Stołeczna Estrada) 웹사이트,
https://estrada.com.pl/skrzyzowanie_kultur/2026/
- 바르샤바시 문화국(kultura.um.warszawa.pl) 웹사이트,
https://kultura.um.warszawa.pl/-/22-skrzyzowanie-kultur
- ≪트루이미아스토(trojmiasto.pl)≫ (2026. 09. 04). Wrzesień melomana: Bogaty początek nowego sezonu,
https://www.trojmiasto.pl/kultura/Wrzesien-melomana-Bogaty-poczatek-nowego-sezonu-n225168.html
- 폴란드 소포트 체임버 필하모닉(Polska Filharmonia Kameralna Sopot) 웹사이트,
https://pfksopot.p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