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네 편의점> 최인섭, 자신의 이야기로 캐나다 관객을 만나다
- 전석 매진으로 막을 내린 한인 이민 가정 이야기, 토론토 마지막 공연 현장 -
지난 10월 25일, 토론토(Toronto) 티모시 이튼 메모리얼 교회(Timothy Eaton Memorial Church)에서는 연극 <설교자의 아들(Son of a Preacherman)>의 토론토 마지막 공연이 열렸다. 캐나다 시트콤 <김씨네 편의점(Kim’s Convenience)>의 원작자 최인섭(Ins Choi)이 극본과 출연을 맡은 이 작품은 목사의 아들로 자란 그의 가족사와 신앙,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삶을 담아냈다. 당초 10월 1일부터 11일까지 열릴 예정이었으나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25일까지 연장됐고, 토론토 공연은 전석 매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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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설교자의 아들’ 토론토 마지막 공연이 열린 티모시 이튼 메모리얼 교회 – 출처: ‘넥스트’ 웹사이트 >
작품은 2025년 4월 밴쿠버(Vancouver)의 퍼시픽 씨어터(Pacific Theatre)에서 초연한 뒤 올해 9월 오타와를 거쳐 토론토에 왔다. 밴쿠버의 제시 리처드슨 시어터 어워즈(Jessie Richardson Theatre Awards)에서는 6개 부문 후보에 올라 우수 오리지널 대본상(Outstanding Original Script)과 예술 공로상(Significant Artistic Achievement)을 수상했다. 이번 공연은 케이틀린 윌리엄스(Kaitlin Williams)가 연출을, 한국계 캐나다인 이하늘(Haneul Yi) 씨가 음악 감독을 맡았다.
공연이 열린 예배당은 1915년에 완공된 고딕 리바이벌(Gothic Revival) 양식의 건축물이다. 설교단 양옆으로 성가대석이 마주 보는 구조였는데, 관객들이 성가대석을 채우고, 그 중앙에서 공연이 펼쳐졌다. 100여 명의 관객 중에는 아들과 함께 온 목회자, 같은 교회에서 온 사람들, 연기 학교 학생과 예술가들이 눈에 띄었다. 성가대석 쪽 빈 벽면 양쪽에는 빛바랜 가족사진과 영상이 비쳤고, 목사의 아들이 자신의 신앙과 가족 이야기를 들려주는 무대가 교회 안에서 펼쳐지면서 예배당은 공연장을 넘어 작품, 그 자체가 된 모습이었다.
공연은 최인섭이 이하늘 씨, 벨린다 코퍼즈(Belinda Corpuz), 유니케 쇠다르마스토(Yunike Soedarmasto)로 구성된 밴드의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목사의 아들로 자라며 경험한 이야기를 독백으로 풀어냈다. 교회에 입고 갈 옷을 두고 어머니와 다투던 누나, 새로 온 아이들과 억지로 친해져야 했던 어린 시절, TV에서 자신과 닮은 아시아인을 찾던 기억들이 차례로 이어졌다. 이소룡(Bruce Lee)과 함께 악당을 물리치는 모습을 노래로 풀어내자 박수가 나왔고, <세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의 캐릭터도 검은 머리에 노란 피부라 아시아인인 줄 알았다는 대목에는 폭소가 터졌다. 이어 조지 타케이(George Takei), 팻 모리타(Pat Morita), 마이클 창(Michael Chang) 등 북미 대중문화에서 찾아낸 아시아계 인물의 이름을 쉴 새 없이 나열하는 모습에서는, 한국계 캐나다인 소년이 느꼈을 정체성의 고민이 웃음 뒤에 묵직하게 전해졌다. TV 화면 속에서 자신과 닮은 얼굴을 찾으며 고민한 그는, 연극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이름 없는 갱스터나 중국인 웨이터 같은 배역을 주로 맡아야 했다고 고백했다.
가족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해 한국 근현대사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최인섭은 객석의 위치를 입체적으로 활용했다. 중국, 일본, 러시아, 한반도의 지리적 관계를 공간적으로 풀어내어, 관객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피난의 역사를 자신이 앉은 자리가 속한 공간 위에서 직접 체감할 수 있었다. 이야기는 가문의 저주를 끊기 위해 기독교를 받아들인 할아버지에서부터 전쟁 중 가정이 겪은 비극, 목회자가 된 아버지, 1975년 캐나다 이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한복을 입고 빛바랜 할머니 사진 앞에서 세배를 올리는 장면과 토론토에서 아버지가 목회하던 시절의 실제 설교 음성이 예배당에 울려 퍼지는 순간,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잘 모르는 캐나다 관객에게도 한 시간 내내 이어진 그의 가족 이야기가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어진 이야기 속에서는 목회자가 되길 바랐던 가족의 기대와 예술가로서의 길 사이에서 오랜 시간 방황하고 고민해 온 그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마침내 알을 깨고 나와 자신의 꿈을 향해 예술가로서 관객 앞에 선 그의 용기 있는 서사는, 가족의 기대와 개인의 꿈 사이에서 한 번쯤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깊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였다.

< 연극이 끝난 후 관객들과 대화하는 최인섭 씨 - 출처: 통신원 촬영 >
공연이 끝난 뒤 만난 관객들의 반응에서도 이러한 공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친구와 함께 온 캐나다 아티스트는 오타와에서 공연을 본 아버지의 권유로 왔다며, “공연 내내 눈물을 흘렸다. 마치 나에게도 내 꿈을 찾아 가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아 큰 감동을 받았다.”고 전했다. 목사의 아들로 자랐다는 또 다른 관객은 “주어진 틀을 벗어나 예술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무대에서 보면서 많은 공감을 했고, 내가 깨뜨려야 할 틀은 무엇인지 돌아보게 되었다.”며 감동을 전했다. 한 관객은 “아름다운 교회에서 깊은 설교(Sermon)를 듣는 것 같았다”며, “최인섭은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설교자”라고 말했다. 뉴욕에서 공연에 관심을 두고 찾아온 관계자도 있었고, 자신의 교회에 공연을 초청하고 싶다는 문의도 이어졌다.
<김씨네 편의점>이 이민자 가족의 일상을 통해 캐나다 다문화 사회의 단면을 유쾌하게 보여주었다면, 이번 <설교자의 아들>은 한국 근현대사와 이민 1세대 부자 관계, 그리고 목회자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깊이 있게 담아냈다. 2011년 토론토 프린지 페스티벌(Toronto Fringe Festival)의 작은 무대에서 시작해 캐나다 국민 드라마로 자리 잡은 <김씨네 편의점>은, 현지 미디어 내 한국 문화와 아시아계 캐나다 예술인들의 위상을 크게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신작 <설교자의 아들>이 이어갈 다음 행보 역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낯설어하던 현지 관객들이 한 가족의 서사에 함께 웃고 울었다는 점은, 한 예술가의 자전적 고백이 앞으로 더 많은 무대에서 깊은 울림으로 확장되리라는 기대를 더해준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넥스트(NEXT)≫ (2026. 10. 09). Review: Ins Choi’s ‘Son of a Preacherman’ is an intimate and funny journey of faith, being Asian and how he ended up here,
https://nextmag.ca/review-ins-chois-son-of-a-preacherman-is-an-intimate-and-funny-journey-of-faith-being-asian-and-how-he-ended-up-here/